올바른 성탄 문화 만든다

등록날짜 [ 2004-02-18 14:32:47 ]

많은 사람들이 12월이 되면 떠올리는 단어들이 있다. 첫눈, 스키장, 산타클로스,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 캐럴, 연말연시, 망년회, 백화점 세일 등.
12월초부터 각 기업체마다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해 성탄절 특수를 겨냥한 마케팅을 펼치면서 사회의 분위기는 둥실 떠올라간다. 이 거품은 성탄절에 최고조로 부풀다가 며칠 뒤 망년회를 끝으로 파장한다. 마치 12월은 성탄절이라는 큰 축제를 준비하는 시즌과 같다.
이번 성탄특집을 통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잘못된 성탄문화와 그 대책을 알아보고자 한다.

왜곡된 성탄절

최근 성탄절을 앞두고 포털 업체들과 PC업체들에서는 이색적인 크리스마스 선물판매와 이벤트, 서비스를 개발해 이미 네티즌들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연예인 100명이 명예 산타로서 시골 분교에 컴퓨터를 전달하기로 했다.
덴마크에서 온 전문 산타는 환경보전을 강조하기 위해서 녹색 옷을 입고 우리나라를 세 번째 방문했다. 어린이들은 선물을 받을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다. 가수들은 저마다 콘서트를 열고, 영화관들은 서둘러 이 날을 노린 개봉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해피 애로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다. 세상은 너무나 재미있다. 전도사가 따로 필요 없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 그는 도대체 예수의 탄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산타클로스의 기원은 AD 3세기 경 소아시아 지방의 대주교 니콜라우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1930년대 빨간 옷을 입고 코카콜라의 선전에 사용되기까지 독자적으로 축일과 풍습이 전해져온다. 가톨릭에서는 특히 자선심이 많았던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고 12월 6일을 그의 날로 지킨다. 선물을 주는 풍습은 17세기 프랑스 수녀들이 축일 전날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면서 시작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산타클로스는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극성맞은 상혼에 의해 우상화되어 서로 상관없는 성탄절의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인본주의 박애주의로 변질시키는 선봉에 서 있다. 특히 진실을 알고 자라나야 할 어린이들이 동심을 노린 상혼에 의해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가 아니라 그 전날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를 더 기대하고 즐거워하도록 감정적 인식을 조작당하고 있다.

올해 한 조사기관에서 유치원 및 초등학생 484명을 대상으로 한 산타의 존재를 믿느냐는 설문조사 결과 89%의 어린이가 믿는다고 대답했다. 또한 믿지 않는다고 대답한 어린이들도 선물은 가족을 통해서 당연히 받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조사결과 알 수 있었다. 즉 산타클로스는 성탄절을 선물이나 카드를 주고받는 시즌처럼 여기게 하고, 예수의 성탄은 4대 성인 중 하나로서 매력 없고 고리타분한 역사적 사실로 물러나게 한다. 더욱이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주고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가르쳐 선악의 심판자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연세중앙교회 청년회에서는 10여년 전에 성탄의 본질을 가리고 그 주인공 행세를 하는 산타클로스에게 죄를 묻는 모의재판을 연 바 있다.

교회 안의 잘못된 성탄 문화

이밖에도 예수와 전혀 상관없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경품행사로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사로잡는다거나, 온 인류를 위해 대신 죽으러 오신 예수에 주목하기보다는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 아기 예수로 나셨다는 것에만 흥분하는 것 등은 이미 성탄절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이러한 문화는 교회 안에서도 별 고민 없이 즐겁게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탄절 전날에는 전야행사만 치르고 예배는 드리지 않는다. 이 전야행사가 끝나고 흔히 젊은 청년들은 성탄절 이브에 교회 안에 모여 일명 ‘올 나이트’로 다과와 선물교환, 온갖 재미있는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고, 새벽에는 새벽 송을 돌며 정작 성탄절 당일 아침에는 예배에 참석하기도 힘들다. 여기에 날 위해 죽으려고 성탄하신 예수께 대한 경배와 감사의 진실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성탄의 목적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지고 가슴 아파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사실 그 심령 안에 예수를 구주로 모신 자라면 날마다 성탄절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그 분을 날마다 환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전하며 말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특별히 성탄절을 맞이하여 각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도 평소에 돌아보지 못했던 수해지역이나 군부대, 불우이웃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해 주며, 전도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많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 혹은 방송인들이 성탄절에 하고 있는 것처럼 연례행사로 그치기 일쑤고, 무엇보다도 성탄절을 매개로 이미 만연해있는 세상문화를 상대하기에는 그 활동이 너무 미약하다.

성탄 문화 바로 세운다

최근 기독교 일각에서 ‘성탄절 문화 바로 세우기’ 캠페인을 기획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예장 합동측 교육국의 한 관계자는 “연말연시를 맞아 음주 퇴폐 향락문화로 변질돼 가는 성탄절 문화에 대한 대안 제시를 위해 이번 캠페인을 마련했다”며 “이 운동을 통해 ‘산타’ 중심의 소비문화 패턴을 성경적인 ‘동방박사’ 중심의 경건한 성탄절로 바꿔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탄절 문화가 성탄하신 예수께 대한 경배와 감사 찬양, 불우 이웃과 함께 하는 희생과 전도는커녕 들뜬 향락 문화 등으로 전락, 그 여파가 사회는 물론 교회 안에서조차 왜곡돼 있다는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총회는 또 교회학교 학생들이 예수님을 기다리며 만드는 동방박사 중심의 성탄절 교육활동 내용이 담겨 있는 공과를 제작, 전국 교회에 무상 보급할 계획이다. 동방박사 캐릭터 등도 개발, 선물 포장지, 전도 카드 등 ‘산타’ 대안용품으로 보급키로 했다.

합동총회는 우선 다른 기독단체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성탄절 문화 바로 세우기 운동 시민연대’를 조직, 경건한 성탄절 분위기 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 운동이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올바로 드러내고 우리의 자녀들을 타락한 세상 문화에서 건져내고 제대로 교육하는 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노력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다행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연세중앙교회의 성탄절

“성탄의 선물은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이 영생의 선물, 즉 독생자를 선물하신 것이니 말구유처럼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영혼이 오직 예수 모실 때만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우리의 심령이 예수 모실 신령한 구유가 되어 성탄하신 주님을 대환영하자.”
연세중앙교회는 개척 이후 매 성탄절마다 담임목사의 설교를 통해 성탄절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올해 우리 교회의 성탄절은 전야행사와 세 번의 예배, 성찬식, 안수집사 안수례, 제직회의로 진행된다. 전야행사를 위해 각 기관은 한 달여 전부터 성탄축하 공연을 기획하고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사회복지국 이웃사랑 선교실에서는 대방동의 독거노인과 장애인 가정에 성탄선물로 성경책을 나눠주기로 했다. 주일학교에서는 인형극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심정과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자라기를 애타게 바라는 담임목사의 심정을 담았다. 즉 산타란 존재는 상업주의가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고, 성탄절에는 날 위해 대신 죽으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그 은혜 감사해서 나도 가장 귀한 것 드리고 환영하며, 마음껏 찬양하고 경배하는 날이라는 말씀을 골격으로 한다.

이 밖에도 청년회의 성극, 워십, 찬양, 콩트 등이 준비 중이다. 이러한 전야행사는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것으로 하고, 출연자들은 영육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게 된다.

한 예로 2001년에 올렸던 청년회 성극 ‘빈 방 있습니까’는 성탄절에 올릴 성극을 준비하는 어느 교회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덕구는 순진하고 선한 성품이지만 어리숙하여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인물이다. 그가 어렵사리 받아낸 배역은 여관의 주인 역. 만삭이 된 마리아와 요셉이 다급한 목소리로 여관 주인에게 빈방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뜬금없이 덕구는 “빈방 있어요!”라고 극본에도 없는 대사를 해버린다. 결국 연극은 망치고 덕구는 눈물로 얼룩진 독백으로 “주님은 우리 집에 빈방 있는 거 아시잖아요. 저는 정말 나를 위해 죽으시려고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할 순 없었다구요!”라고 절규한다. 어눌하게 고백하며 눈물 흘리는 덕구의 모습을 보며 성도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우리가 소외되고 버려진 자였을 때 주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만나주셨고 그 은혜가 감사해서 기도하고 찬양할 때 우리의 고백은 덕구처럼 주님의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다. 성도들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알면서도 그 고통의 값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송구함과 그 사랑을 가슴에 안고 덕구처럼 울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는 문화행사를 올림으로써 서로 은혜 받고 변화되는 역사가 이 성탄절에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주의 종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 말씀에서 나온다. 성탄절의 절정은 당일 아침 예배와 성찬식에 있다. 이 예배에서 담임목사는 눈물로 설교한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지옥 갈 죄를 해결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양식을 얻었다. 겟세마네 동산의 절규의 기도를 거쳐 가야바 뜰의 매맞음의 고통과 골고다의 저주의 길을 지나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주님이 찢으신 살과 피를 우리가 먹고 마시며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것이 성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성탄의 목적을 오해하여 사랑의 주님을 배신하지 말자. 성탄을 알지 못하여 방종하는 불신자에게 이 성탄의 소식을 전하자. 과거에 우리들이 어떻게 성탄을 생각했던가 뒤돌아보며 나부터 회개하자.”

성탄절 예배는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의 예배이며 눈물로 얼룩진 감사와 회개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 이 성탄의 감동을 가슴에 품고, 우는 사자 같이 덮쳐오는 세상의 성탄 풍습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자, 성도들은 교회에서 같은 취지로 마련해 놓은 일정에 참여함으로써 거룩한 성탄절을 보낸다.

우리는 예수께서 주신 능력으로, 세상 문화의 독소로 마비된 사람들의 양심을 해독할 다양한 소재의 문화행사를 개발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성탄하신 예수에 대한 교육과 환영과 감사의 행사뿐만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는 행사들을 일년 중 시시때때로 기획함으로써, 성탄절을 볼모로 바싹 기승을 부리는 상업주의와 박애주의에 맞서야 한다.

돌아오는 성탄절은 불신자 이웃, 친지에게 선물 하나 건네며, 함께 교회에 가자. 거기서 가슴 깊은 회개와 영생의 선물을 건네주자.

위 글은 교회신문 <5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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