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63)] 성령으로 절제하고 죽기까지 충성하라

등록날짜 [ 2013-06-05 17:16:50 ]

혈기·정욕·비방은 오직 성령 충만으로만 절제할 수 있어
주님 일을 내 일처럼 맡아 본이 되는 자가 직분 맡아야


디모데전서 3장에는 여집사가 갖출 자격에 관해 자세히 말해 놓았습니다. 여집사로 세울 자는 “단정하며,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절제하며’와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집사의 자격을 깊이 있게 알아보겠습니다.

절제하는 자에게 직분을 주라
성경은 절제를 잘하는 자에게 직분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유행하는 옷이나 신발 등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사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은 꼭 사야겠지만, 그렇지 않은데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사야 직성이 풀리는 마음은 정욕에서 비롯합니다. 마귀역사는 정욕을 가져다 줍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에 욕심을 부린다면 마귀역사를 이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절제했다는 것은 곧 마귀역사를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사치하고 낭비하고 싶은 마음 외에도 절제할 것이 많습니다. 먼저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혈기를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큰 파문이 일어납니다.

행동도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표정이나 몸가짐도 조심해야 합니다. 별일 아닌 일로 얼굴을 찡그리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집니다.

우리는 매사에 언행과 감정을 절제하여 항상 만인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말한 대로 여집사가 단정하고, 참소하지 않고, 절제한다면 그 인격과 품위가 얼마나 훌륭하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인격과 품위가 훌륭한 사람이라야 직분을 줄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만 절제력 생겨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가볍게 행동하여 후회합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며 얼마나 자책하는지 모릅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저 자신도 말을 절제하지 못해서 ‘어쩌다 내가 이런 말을 했던가?’ 하고 크게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말은 오직 성령께서 혀를 붙들어 매셔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여 회개하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말, 혈기, 성적 욕구, 하고 싶은 행동, 자기 자랑, 사고 싶은 것을 절제하지 못합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텔레비전 등 하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이 절제가 안 됩니다.

절제하지 못해 온갖 이 세상 세태와 풍속을 따라갑니다. 이 모든 것을 절제할 능력이 육신에는 없습니다. 성령만 이를 절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절제력을 지닌 사람이 직분자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직분자가 갖출 자격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직분을 방해하려는 악한 마귀역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실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분자의 생각 속에서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궤계를 다 부립니다. 단정하지 못하여 흐트러지게 하고, 서로 참소하게 하고, 절제하지 못하게 하여 감정을 폭발하게 합니다.

이처럼 온갖 수작을 다 부려서 직분자를 마귀 앞잡이로 쓰고 있습니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귀에게 멱살 잡혀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악한 마귀와 벌이는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는 정신 바싹 차려서 단정하지 못하게 하고, 참소하게 하고, 절제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역사를 성령 충만으로 이겨야 합니다.

다음으로 여집사가 갖춰야 할 자격은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직분을 부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마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아 몹시 안타깝습니다.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자격 있어
집사 직분을 받아서 열두 달간 집사 소리만 들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한 명도 전도 못 하고, 한 번도 충성하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시험에 들어 목사 속을 바글바글 썩입니다. 그렇게 직분을 남용한 자가 종국에 가서 어떤 심판을 받을지 실로 무섭습니다.

목사가 성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속 썩을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니까 성도 때문에 속 썩습니다. 그런데 그 직분자는 자기 때문에 목사가 속 썩는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불러다 놓고 심각하게 “이러이러한 일을 하지 마세요” 권면해도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목사가 성경을 비춰 가며 권면해도 그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귀역사는 하나님 말씀으로 권면해도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것쯤으로 여기게 합니다.

감히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해 하신 권면을 무시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목사님과 몇 마디 대화한 줄로 압니다. 하지만 돌아서는 주의 종의 심정은 매우 씁쓸하고 때로 가슴 터집니다. 성경에 목사를 고통스럽게 하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여기서 ‘유익이 없다’는 말은 손해만 있다는 말입니다. 손해 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흑백논리가 아주 분명합니다. 축복 아니면 저주입니다. 죽으면 천국 아니면 지옥입니다. 강단에서 그렇게 애가 타게 죽을 각오로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성도 자신이 그 말씀을 들어야 할 당사자인 줄 모릅니다.

자신이 당사자인 줄 알면 깨달아서 그 속에서 마귀역사가 떠나가야 하니까 마귀는 당사자로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잡념과 졸음으로 귀를 막습니다. 우리는 설교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독대하는 당사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직분자는 이렇게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고, 절제하고,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직분자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34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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