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17)

등록날짜 [ 2013-07-30 17:04:37 ]

생명의 차원에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것이 복
주리고 목마른 자의 갈급함으로 교회 부흥시켜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창세기 21장에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사라의 몸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는 목마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목마름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은 자신들의 신분도 모르고 주인 사라와 그 아들 이삭에게 함부로 대하다가 집에서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갈이 자기 아들 이스마엘을 이끌고 집에서 쫓겨날 때 몸에 지닌 것이라고는 아브라함이 준 떡과 물 한 가죽부대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열대지역이어서 물을 얻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물이 부유를 상징했습니다. 야곱이 가는 곳마다 땅을 파서 우물을 소유했다는 말은 곧 야곱이 부자라는 뜻입니다. 물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들판에서 방황하다 보니 집에서 가지고 나온 가죽부대의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스마엘이 목말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하갈은 물 한 모금 줄 수 없었습니다. 들판을 아무리 헤매도 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식이 거꾸러져 죽게 되자 차마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방성대곡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하갈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 하갈을 불러 아이를 일으켜 세우게 하고 하갈의 눈을 밝히니 하갈이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 아들 이스마엘에게 마시게 했습니다(창21:8~20).

이처럼 목마름은 무척이나 고통스럽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정신없이 밥과 물을 찾을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말합니다.

우리도 영혼이 사는 일에 이처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 차원에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일이 바로 복(福)입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바라는 자는 육신의 배부름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배부르기를 사모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의 일을 굶주리듯 목마르듯 사모해야 합니다. 굶주린 자가 밥을 찾듯,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주님 일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또 교회는 일하려고 하는 자에게 일거리를 주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와서 얼마든지 배불리 먹고 마른 목을 시원하게 축이게 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주린 자’는 곧 주님 사랑받기에 주린 자입니다. 그 사랑 속에서 진실한 충성이 나오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행하는 충성은 진실합니다.

우리는 다 주님께 사랑받기에 주린 자가 되어 주님의 넘치는 의로 가득해야 합니다. 내가 의에 주리듯 주님 일에 관심을 두면, 주님께서도 내 일에 관심을 두십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한 때 먹을 밀가루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 엘리야에게 마지막 밀가루로 빵을 구워 대접하자 엘리야는 그 빵을 먹고 축복했습니다. 엘리야가 복을 빈 그대로 사르밧 과부네가 동네 사람들에게 빌려온 기름병과 단지는 가득 찼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게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으시도록 진실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쏟을 수 있는 의와 관심은 사르밧 과부네 부엌 뒤주에 남은 딱 한 때 먹을 밀가루처럼 적은 분량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쏟으시는 의와 관심은 영원하고 광대합니다.

사모함으로 준비된 자
주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는 일거리가 항상 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아무 일거리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일을 맡긴다고 하셨고(마25:23),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해지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3:12).

교회에서 어떤 사람에게 기대를 걸고 일을 맡겨 보면, 뜻밖에 부도내는 예를 종종 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다시는 그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반면에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맡깁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주의 일을 늘 사모하여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왜 내게는 일을 시키지 않습니까?”라고 묻고, 주린 자가 음식을 찾고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자원해서 주의 일을 찾아서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의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모하기는커녕 관심조차 없다면, 이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주린 것조차 모르는, 살아 있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교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스스로 주의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오래 다닌 신자라도 눈치를 보며 일을 하지 않으려는 이도 있습니다. 또 관망하다가 시키면 하고, 시키지 않으면 안 하는 이도 있습니다.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 누가 물을 줘야 마십니까? 자기가 살려고 물을 보면 뛰어들어 벌컥벌컥 마셔댑니다. 누가 주의 일을 시키기를 바랍니까? 자기가 살려고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겸손한 척하며 주의 일을 사양합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음식과 물을 주면 절대로 사양하지 않습니다. 덥석 받아 주린 배를 채우고 갈한 목을 적시고 봅니다. 이렇게 주님 일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힘써 일하라는 말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을 양식과 물을 찾듯, 교회 부흥도 영혼을 살리려는 사모함이 있을 때 일궈낼 수 있습니다. 혼자만 열심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교회 부흥에 주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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