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라
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18)

등록날짜 [ 2013-08-07 10:03:57 ]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먹을 것을 찾듯이
육신이 있는 동안 주님 일에 주린 자가 되어야

주린 자는 본능적으로 먹으려 하고 목마른 자는 본능적으로 마시려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는 뜻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꼭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살려면 반드시 물을 마시고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성경을 보면, 주님 일을 ‘의’로 삼고 그 ‘의’를 이루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가 많습니다. 이들은 모두 의에 주리고 목말랐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예수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전한 복음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다 죽였으나 예수는 삼 일 만에 살아나셨다. 만약 예수께 죄가 있다면 그 죄 때문에 살아나지 못하고 죗값으로 죽었어야 한다. 그러나 삼 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예수께 죄가 전혀 없다는 증거다. 한편으로 예수가 죽었다는 사실은 누구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는 증거다. 바로 너와 나,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예수가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받는다.”

스데반이 이렇게 강렬하게 복음을 전할 때, 바리새인, 서기관, 장로, 유대인으로서는 어떻게든 그 사실을 부정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죄인이라고 소리쳐야 예수를 죽인 자신들이 의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면 예수를 죽인 자신들의 불법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불법을 합법화하려고 예수를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서 사정없이 죽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
그 자리에서 스데반의 육신은 돌에 맞아 처절하게 숨졌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전형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본능을 강하게 나타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예수가 죄가 없다는 사실을 변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일을 위하여 죽기까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심이 곧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또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내 육체를 아낌 없이 써야 합니다. 목마른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고 싶어 마실 물을 찾듯이, 주린 자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생명을 보존하려고 먹을 양식을 찾듯이 복음 전하는 일에 목마른 자는 그렇게 절절하게 예수를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도 한평생 이런 주림과 목마름으로 예수를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초대교인도 이런 사모함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의에 주림과 목마름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서 채우고, 능력을 나타내서 채우고, 병을 고쳐서 채우고, 귀신을 쫓아내서 채우는 일에 자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사도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했습니다(롬12:11).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놓고 독수리가 먹잇감을 채 가듯이, 목마른 자가 물을 움키듯, 주린 자가 밥그릇을 절대로 양보하지 않듯 그렇게 절절하게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배부른 복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주의 일을 하고, 주를 위해 죽는다 해도 그것으로 육신이 배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주의 일에 포만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할 때 그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부유가 복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믿고 사모하며 그 일을 합니다. 정말로 배고픈 사람은 식당에 아무런 먹거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일단 식당에 가 봅니다. 진짜로 목마른 사람은 수도꼭지가 고낭이 났어도 일단 입을 대고 빨아 봅니다.

이와 똑같이 주님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교회에서 어떤 일이든지 찾아서 하려고 기웃거립니다. 주린 창자를 채우듯 주님의 거룩하고 신령한 뜻을 위해 내 육신을 써 버립니다. 기왕 육신을 가지고 사는 동안, 하루가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간다면 주님 일로 하루 하루를 채워야 합니다.

충성은 훈련으로 되지 않는다
교회에서 성도를 잘 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교회를 보고 성도 훈련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는 훈련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밥 먹고 물 마시는 일은 시키지 않고 훈련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자동으로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에 주리고 목마르면, 주님의 일을 부도내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재빨리 먹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면 숨 쉴 틈 없이 벌떡벌떡 들이켭니다. 이같이 우리는 주님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자동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 의지가 하나님 말씀을 옳다고 믿고 받아들여서 움직여야 진정한 충성입니다. 주의 일은 훈련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훈련하면 내 의지로는 하기 싫어도 눈치 보며 억지로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충성은 억지가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배고픈 자가 밥을 요구하듯이, 목마른 자가 물을 요구하듯이,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목사는 설교로 성도에게 그들이 주의 일에 목마르고 배고픈 자라고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배고픈 자가 밥을 먹듯이,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듯이 주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하늘에 복이 쌓이고 땅에서 그 일을 할 조건과 환경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복 있는 자가 됩니다. 할렐루야!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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