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6)]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6)

등록날짜 [ 2014-01-14 09:28:19 ]

하나님의 사랑은 베풀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대접받으려는 근성 버리고 주님처럼 아낌없이 줘야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만 하나님께 속한 자’라고 강조하며 서로 사랑하기를 권면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성품이기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을 사랑해 봐야 ‘하나님이 이처럼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구나’ 하는 하나님의 애절한 사랑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려면 남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은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 사랑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롬8:12;13:8). 빚진 자는 어떻게 하든 그 빚을 갚으려 합니다. 그래야 채무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 받은 사랑을 ‘빚’으로 생각한다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는 않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니,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갈등이 생깁니다. 대접받으려는 근성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사랑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기에 만물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 중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롬1:20).

또 육신을 입고 인간의 역사 속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능력을 행하시니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고, 소경이 눈을 떠서 보고, 문둥병자가 깨끗이 고침을 받는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펼쳐졌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예수의 제자들이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 시기는 주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부터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인류가 저지른 죄를 사해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다는 그 놀라운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 후부터 예수 몰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려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내 안에 남에게 줄 사랑과 능력과 힘이 충만하게 합니다. 사랑은 남을 사랑해 본 자만 아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영혼을 맡아 봐야 사랑을 안다
직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분을 수행해 봐야 직분 맡은 자의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구역장이나 남전도회장, 여전도회장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목사님, 이제야 목사님께서 우리 성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겠습니다. 구역장 직분을 맡아보니까 구역식구들이 잘 따라 주지 않을 때 속상합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이 이렇게 수많은 성도 데리고 속이 얼마나 상하실지 짐작이 됩니다.”

구역장으로서 구역식구를 맡아 사랑해 보아야 자신이 그간 구역장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깨닫습니다. 몸소 체험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주님, 목사, 직분자가 베푼 사랑을 모를 것입니다. 사랑해 본 사람만 사랑이신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심정을 압니다. 그래서 예배에 늦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잘못하면 ‘주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실까’ 알기에 매사 노심초사하며 조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면 자신도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 내가 잘못되면 아들을 죽이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파하신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 마음을 편하게, 기쁘게 해 드리려면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성공해야 합니다.

여자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보면 친정어머니에게 효도할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자기 어머니가 어떤 산고를 치르고 자기를 낳았는지 몸소 체험했으니까요. 또 자식 일로 속 끓여 본 사람은 자기 때문에 속 끓였을 부모 마음을 절로 알게 됩니다. 이렇듯 자식을 낳고 길러 본 경험으로 부모 심정을 알듯, 예수 믿지 않으려는 이웃을 사랑한 경험으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의 심정을 마음 속 깊이 알게 됩니다. 이처럼 육적인 일도, 영적인 일도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
사도 바울은 자기가 활동하는 시기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라고 믿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렇게 믿었습니다. 지금도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려는 사모함과 소망이 넘칩니다. 재림을 소망하는 이들은 신랑되신 주님이 다시 오시기만을 고대합니다. 괴로워도, 슬퍼도,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닥쳐와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참고 견딥니다. 주님이 자신을 만나 주실 때, 그간 당한 모든 고통과 어려움과 억울함을 신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종말의 시기에는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 하나 지키려고 몸부림을 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피해 보려고 거짓말하고, 예수 믿는 표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자기 육신의 소욕과 정욕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내 영혼을 망치려는 악한 원수 마귀의 계략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 영혼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느라고 시간과 물질을 온통 자기에게만 쏟아부은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이 나를 살리려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쓰셨듯이 이제는 이웃 사랑하는 일에 생애를 알뜰하게 쓰는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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