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15)] 교만과 불순종의 근성을 버려야 한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15)

등록날짜 [ 2014-03-24 17:05:14 ]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으니
스스로 높아지려는 근성을 버리고 주님께 무릎 꿇어야

말세에 마귀는 믿음의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타락시키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 마귀의 수단을 잘 알려 주는 성경이 바로 디모데후서 3장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5).

특히 교만은 마귀의 근본 성품으로 마귀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던 천사장이 하나님처럼 영광 받으려고 교만 부리다가 하늘에서 쫓겨나 마귀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마귀에게 속아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을 부리다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지금도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교만하면 자기도 모르게 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는 그분께 은혜 입을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순종은 안식을 파괴한다
우리는 평소 자신이 질서를 어지럽히는 교만한 자가 아닌지 잘 살펴야 합니다. 만약 어느 군대 사단에서 사단장을 제쳐 놓고 연대장이 사단장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는 군대 기강을 어지럽힌 죄로 당장 군사재판에 넘겨질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는 순간, 에덴동산은 질서가 깨져 하나님과 인간 둘 다 안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 자신의 안식을 파괴하기로 작정한 행동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겸손히 자기 지위를 지키면 인간 자신은 물론 창조주 하나님의 안식도 지켜집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피조물로서 인간의 지위를 제대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교만과 불순종은 늘 함께 역사합니다. 교만하면 불순종이 바로 뒤따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고, 그런 인간을 대하는 하나님은 매우 불편해 하십니다. 불순종한 당사자의 안식도 파괴되고 맙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가 불순종하니 그와 그의 아버지 모두 안식을 잃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물려줄 분깃을 달라고 해서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먼 나라에 가서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게 재산을 다 쓰고 나서야 자신의 안식이 부서진 것을 알았습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도 배불릴 수 없는 비참한 지경이 되서야 비로소 아버지 집에서 있었을 때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는 집 나간 자식이 재물을 다 없이한 후에 고생하다가 돌아올 것을 미리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매일 문 열어 놓고 그 자식을 기다렸습니다.
 
자식이 집에 거할 때는 아버지의 마음이 편안했는데, 아들이 불순종하여 집을 떠나자 그 자식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기에 아버지의 안식이 산산이 부서진 것입니다. 아들이 불순종하니 아버지와 자신의 안식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불순종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자신의 안식을 모두 깨뜨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시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육체에 인간의 모든 죄를 친히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인간의 죗값을 없애 주심으로 하나님의 안식일을 회복해 드리고, 이를 믿는 인간도 안식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고 했습니다. 이 말은 첫 사람인 아담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안식이 부서졌고, 또 다른 한 사람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인간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는 순종으로 하나님과 인간 모두 안식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사단의 정체를 보게 하는 십계명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유일신을 부정하고, 다른 신을 섬기려 하고, 하나님의 안식과 인간의 안식을 무너뜨리려 하는 사단과 싸워 이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통하여 사단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죄짓게 하려는 사단의 정체를 정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마귀가 있는 한 십계명은 존재해야 합니다. 교만하고 불순종한 자는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만하고 불순종한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벌써 내가 하는 어떤 행동으로 말미암아 불안이 오고 분쟁이 생긴다면, ‘내가 온유하고 겸손했다면 사람들의 의견을 따랐을 텐데 이처럼 문제가 생긴 것을 보니 내가 교만했구나. 내가 높아지려 했구나. 이것이 마귀의 근성이요, 특성이구나. 내가 왜 마귀에게 속아 불의의 병기가 되려 했나?’라고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한 번 불의의 병기가 된 사람들은 뜨거운 회심으로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는 간 곳 없고 주만 바라봐야 합니다. 자존심이 살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결국 나를 죽입니다. 높아지고 잘나고 똑똑한 것이 자기를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이런 미련한 짓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죄의 근원인 교만
분쟁도 교만해서 생깁니다. 성도끼리 서로 마음이 안 맞아 하나 되지 못하는 것도, 높아지려는 것도 다 교만 탓입니다. 교만해서 하나님과 나와 안 맞고, 다른 사람과도 안 맞습니다. 교만해서 불평불만, 시기 질투가 생깁니다. 인색한 것도 돈으로 살려는 교만에서 비롯했습니다. 교만해서 헌금도, 충성도, 감사도, 전도도 못 합니다. 교만해서 서로 원수가 됩니다. 교만이 모든 죄의 원인입니다.

남의 힘에 눌려 억지로 겸손한 척해야 소용없습니다. 교만은 한 번 내 속에 역사하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아이고, 이제 겸손해야지. 내가 교만해서는 안 되지’라고 결심하지만 내 속에는 자존심과 육신의 소욕이 꽉 차 있을 때가 잦습니다. 이런 것들이 내 속에서 올라오는데 억지로 참습니다. 교만이 속에 들어 있으나 나오지 못하게 잠깐 참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사람임을 깨닫고 무릎 꿇어 예수 피 공로 앞에 회개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거룩하신 성령의 인격이 내 안에서 나타나서 교만의 근성을 완전히 몰아내고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합니다. 교만은 말세에 나를 망하게 하니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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