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22)]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22)

등록날짜 [ 2014-05-13 10:35:55 ]

믿고 맡겨 주신 그 은혜를 아는 자는 망하지 않아
하나님과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언제나 넘쳐야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딤후3:2).

말세에는 하나님께 감사치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을 낳아 준 부모에게조차 감사치 않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행위는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메말랐을 때 뒤따르는 악한 행실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을 때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합니다. 낳은 다음에도 그 자식을 사람다운 인격을 갖춘 자로 키워 보려고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자식을 키울 때 당하는 마음의 고통은 출산할 때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도가 높습니다. 자기 모든 것을 바쳐 키운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고 자기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로 전락할 때, 부모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출산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부모의 마음이 쫙쫙 찢겨집니다.

자기를 낳아 주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며 손발이 다 닳도록 길러 주신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절대로 자기 인생을 낭비할 수 없고, 자기 영혼의 때가 멸망에 처하게 방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죄를 지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시편 기자를 통해 인간 때문에 찢어지는 하나님의 상한 마음을 그렇게 분명히 표현해 놓았을까요.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2~23).
 
죄를 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 일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찢는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어떤 환란이 와도 하나님께서 그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고, 자기 마음도 편해지게 합니다.

감사에서 나오는 형제 사랑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그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동침하여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들 둘을 낳느라고 모진 출산의 고통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장남인 가인이 곡물로 드린 제사는 받지 않고 둘째 아벨이 양의 피로 드린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격분한 가인은 악한 자 마귀에게 속하여 동생을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돌로 쳐 죽여 암매장했습니다.

그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들은 부모 아담과 하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생떼 같은 자식이 자기 친형의 돌에 맞아 죽었을 때 그 부모의 피멍 든 가슴, 그 찢어진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치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자기 자녀를 땅에 묻지 않고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어찌 가인이 자기 동생을 돌로 쳐 죽였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죄로 멸망해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받을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일만 분의 일이라도 헤아린다면, 주님께서 피 흘려 구원한 형제를 절대 미워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형제가 미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니 나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 사도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영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4~15).

하나님께 나를 기억시키는 감사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보면,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 달란트로 유익을 남겨 주인에게 가져와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가 받은 달란트로 아무런 유익을 남기지 않은 채 원금 그대로 가지고 주인 앞에 와서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한마디로 자기같이 부족한 자가 장사해서 유익을 남긴들 얼마나 남기겠느냐는 말입니다. 달란트를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대략 5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자기를 믿고 그 큰 금액을 맡겼으니 감사해서 죽도록 충성해야 했지만, 달란트 유익을 남기기는커녕 부자인 주인 핑계를 대며 자기의 불성실한 죄를 빠져나가려 합니다. 교만하고 오만하고 불순합니다. 주인은 일하라고 달란트를 맡겼건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묻어 뒀다가 그냥 들고 왔으니 이 얼마나 주인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악한 태도입니까? 주인은 그 악한 종을 꾸짖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쳤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넘쳐나야 할 감사의 조건
주님은 나를 믿어 주시기에 달란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믿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그에 상응하게 일하여 큰 유익을 주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나를 믿고 주의 일을 맡겨 주신 주님 은혜에 감사치 않으면, 절대로 주의 일에 충성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말한 내용은 바로 말세에는 하나님께 감사치 않으면 망한다는 경고입니다. 감사치 않는 자는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없고, 결국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가 될수록 더욱 감사할 조건이 넘쳐야 합니다. 감사할 조건을 항상 붙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 감사의 행동, 감사의 삶을 날마다 올려 보내야 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최고로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모두 위로 하나님께 뜨거운 감사가 넘치길 바라고, 아래로는 부모에게 뜨겁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를 비롯한 모든 형제자매에게 감사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8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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