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28)] 신령한 정을 발산하여 영혼을 살려 내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28)

등록날짜 [ 2014-07-01 13:38:44 ]

영적인 사랑, 영적인 책임이 점점 흐려지면서
지옥으로 가는 영혼에게 관심 없는 것이 죄다

평신도 때부터 신앙상담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여자 성도가 상담하러 왔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제가 교회 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하십니다. 시어머니께 불효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데, 시어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돌아가신 후에 믿으면 안 되겠습니까? 시어머니께 효도하는 일이니 하나님도 기뻐하시겠죠?”

이런 정은 영혼을 죽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은 시어머니가 아무리 교회 못 가게 해도 기어이 예수를 믿고 그 시어머니도 구원해서 지옥 신세를 면케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사시면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시겠습니까? 며느리가 시어머니 마음에 들게 잘해서 예수 믿게 해드려야죠. 용돈도 드리고, 고기도 사 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려서 어떻든 시어머니 마음을 돌이켜서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가게 해야 그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시어머니가 속상해 한다고 예수 안 믿으면 일단 나 자신이 지옥 가고, 시어머니도 지옥 가니 그 가정이 망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께 영적인 정을 주세요. 육적인 정은 주면서 왜 영적인 정은 못 줍니까?”

그 시어머니가 결국은 며느리에게 이끌려 교회에 왔습니다. 진짜 정이 무엇이고 진짜 사랑이 무엇입니까? 최후까지 그 영혼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무정한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인 정, 영적인 사랑, 영적인 책임을 지는 자입니다. 영적으로 도무지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장 31절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정이 있는 사람은 전도하지 않고는 못 견딥니다. 신앙인으로서 정이 없는 자는 곧 전도하지 않는 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자가 매정한 자요, 우매한 자요, 무자비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형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 34년 동안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받으셨는데도 제 기억으로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나쁘게 말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밤낮 눈물을 흘리시면서 아버지가 구원받지 못하실까 봐 걱정하셨습니다.

“너희들 아버지 미워하지 마라. 아버지가 몰라서 그러신다. 저러다 돌아가시면 지옥 가지 않겠니? 아버지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 많이 해라.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니? 우리만 천국 가고 너희 아버지 지옥 가면 우리가 무슨 염치로 천국에 있을래.”

핍박하는 아버지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린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밤낮없이 어머니를 때리고 우리를 못살게 구는 아버지에게 우리는 무정했습니다.

하나님 사랑받은 자는 무정할 수 없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신령한 정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서 아무것도 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 없는 자가 무정한 사람입니다. 자기 아들을 나 위해서 피 흘려 죽게 하시고 나를 지옥에서 구원했는데도 하나님과 정을 못 느끼고, 사랑을 못 느끼고, 은혜를 못 느낀다면 말이 됩니까? 또 이 은혜가 나만 위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까?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살린 형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는데 어떻게 미워하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자라면 절대로 이웃에게 무정할 수 없습니다.

탕자는 무정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지 말라고 극구 말렸습니다. “아들아, 너 집 떠나서 혼자 못 살아. 같이 살자.” 그런데도 탕자는 아버지의 정을 무자비하게 뿌리쳤습니다. “싫어요. 내게 돌아올 분깃을 주세요.” 자신의 분깃을 가지고 멀리 외국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정을 줘도 받지 않는 것이 무정한 것입니다. 무정한 자의 결과가 바로 허랑방탕이요, 종국에는 비참한 말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정하게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정 안에서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영적인 정을 제한 없이 발산하라
마지막 때는 무정한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무정한 사람이 되지 말고 그 속에서 항상 정이 넘치는 사람이 되되 영적으로 풍부한 정이 넘쳐야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가는데 어떻게 하나’라는 정에 끌려서 전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는 영혼을 향해 최고로 신령한 정을 발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전도는 교인 수를 늘리려는 욕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에 타 죽는 자를 살려 내는 것이 욕심입니까. 물에 빠져 죽는 자를 건져 내는 것이 욕심입니까. 지옥 가는 자를 천국으로 보내는 것이 욕심입니까. 이것은 욕심의 차원을 넘어선, 진정한 영적 사랑입니다. 욕심은 제한이 있어야 하지만 사랑에는 제한이 없어야 합니다. 제한 없는 정, 제한 없는 사랑이 속에서 넘쳐 나야 합니다.

우리는 무정한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이 내게서 제한 없이 나타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로 말미암아 멸망하는 영혼의 수가 줄어야 합니다. 숨 쉬며 살아 있는 그 날까지 내 속에 있는 신령한 영적인 정을 발산하여 수많은 영혼을 살려 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9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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