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안에 우상숭배를 타파하라(6)] 영적생활을 위해 육신을 값지게 사용하라
육신이라는 우상

등록날짜 [ 2014-07-21 13:22:30 ]

본능을 자극해 은연중에 신앙생활을 방해하니

영적인 힘으로 육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어야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예수를 시험할 때에 네가 사십 일 동안 주렸으니 배고프지 않느냐? 그러니 돌을 명해서 떡 덩이로 만들어라. 그러면 그것을 본 많은 사람이 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것이다라고 유혹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우선이다

이 세상에 사는 인간은 육신을 입었으므로 먹어야 한다는 본능을 제일로 여깁니다. 그래서 마귀역사는 언제나 먹을 것으로 우리 인간을 시험합니다. 먹을 것 때문에 하루아침에 믿음을 버리게 하고, 사람과 원수 되게 하고, 부부가 불화하게 하고, 부모와 자식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육의 본능이 이렇게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마귀에게 내가 사십 일 동안 주렸지만 그래도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돌을 떡으로 만드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그대로 따르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고 해가 빛을 잃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십자가 곁에 선 백부장 하나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15:39). 이렇게 주님은 하나님 말씀대로 인류의 구속사를 달성하려고 오셨습니다. 절대로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드러내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항상 내가 가진 육의 것보다 하나님 말씀이 달성되는 일을 먼저 도모합니다. 양보 없는 절대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얼마나 영광을 받으시며,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얼마나 좋아지겠습니까?

목회가 너무 힘들면 나도 모르게 고되다, 어렵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 속에 성령께서 다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으로 깨우쳐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말씀이 우선이니 주의 일을 제쳐 놓지 마라, 주의 일 속에 파묻혀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으로는 잔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쪽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요(14:8),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고전10:31). 우리 육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모품입니다. 또 우리 삶의 근본은 하나님 말씀을 달성하는 데 있습니다. 육신이 끝난 다음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산만큼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신은 신앙생활을 위한 소모품

간혹 사업하다가 망하면 예수 믿어도 소용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들었는데 낫지 않으니까 예수 믿어도 소용없다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멀어서 못 가겠다는 사람도 있고, 교회 갔더니 돈 내라는 요구가 많다고 시험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육의 사람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육신의 만족을 먼저 구하고 육신이 우상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영의 만족을 먼저 구합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6:20).

영의 사람은 하늘을 향한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예물도 기쁨으로 드리고 교회가 멀어도 영의 소욕을 채우려고, 주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순종하려고 예배하러 옵니다.

주를 위해 투자한 모든 시간과 노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혼의 때에 내 몫이 되는 유익한 기업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안다면 누가 육신의 소욕대로 살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에 육신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으면 하나님과 절대로 교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육신은 이 땅에서 아무리 오래 버티고 살아도 백 년 미만입니다. 육체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은 오직 영적인 세계에 있습니다. 육신의 소욕은 신앙생활 하는 데 방해꾼이요, 하나님의 원수요, 내 영혼의 원수입니다. 그러니 희망 없는 육신에 지지 말고, 영원한 희망이 있는 영이 항상 승리하게 해야 합니다.

인간의 약점은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것, 곧 육신이 우상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신앙생활 하는 데에 쓸 소모품입니다. 소모품인 육신을 우상처럼 여겨서 아끼고 사랑하며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육신은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지만 육신이 지은 죗값은 내 영혼이 영원히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이유도 육신의 소욕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선악과를 따 먹었으니 육신의 소욕은 이렇게 한 치 앞도 볼 줄 모릅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쫓아다니지 말고, 영의 소욕에 이끌려야 합니다. 영의 소욕대로 살려고 할 때 육신의 소욕은 항상 반대하지만, 그럴지라도 영의 소욕대로 살아야 내 영혼이 영혼의 때에 부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63).

우리는 신앙생활을 왜 못 하는지, 기도를 왜 못 하는지, 감사와 충성을 왜 못 하는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은 못 한다는 핑계로 가득하고 영적인 역사에 절대 협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영적 생활에 협력하게 합니다. 육신을 영적 생활의 동반자로 삼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욕을 이겨야 합니다. 육신을 우상으로, 신앙생활의 상전으로 모시지 말고, 신앙생 하는 일에 하인으로 부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의 소욕이 육신의 소욕을 하인으로 부릴 만큼 영적인 힘을 가지고 그만큼 영적으로 절대적 위치에 서 있어야 합니다. <계속



기독교 안에 있는 미신의 전통을 타파하라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39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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