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37)] 선(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악한 세대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37)

등록날짜 [ 2014-09-05 02:04:16 ]

진정한 선은 박애주의 행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여 그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 내는 것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딤후3:3).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한 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때에 당할 일 중에서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악의 심판
‘선(善)’이라고 하는 개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은 그저 인정을 베풀어 박애주의적인 사랑을 하는 정도면 ‘선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은 지옥 가는 영혼을 살려 내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죗값을 대신 갚아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선한 분입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사람들이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한다”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선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곧 영혼 구원의 역사가 점점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이는 말세지말에는 마귀역사가 예수 복음을 전하려는 전도자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날뛰며 복음 전도자를 가로막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산업이나 목숨을 빼앗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해 지옥 가는 한 영혼이라도 더 건져 내는 선을 행하려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받고, 고난받고,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당하고, 멸시당해도 목숨을 걸고 전도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예수 생명을 전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대로 복음전도라는 선을 행하고 산 자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면합니다. 이 세상 어떤 고통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을 때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심판은 두렵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선악 간에 하나님의 심판은 꼭 받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속으로 선을 행하는지 악을 행하는지 다 보고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만드셨는데 그 눈이 보는 바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을 만드셨는데 지금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성령으로 내 안에 모시고 있으면서 그 하나님의 감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최고의 선은 굶주린 사람에게 밥 주는 것보다,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보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주며 위로해 주는 것보다, 먼저 그 영혼이 지옥에서 당할 영원한 형벌에서 나오도록 구원해 주는 복음전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혼을 살리는 생명이 최고의 선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일러 주신 하나님 말씀도 선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어 영원한 지옥 형벌을 당할 줄 뻔히 아시기에 먹지 말라고, 생명을 우선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선악과를 먹어 그 죗값으로 영원한 지옥 형벌이라는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선을 좋아 아니한다’는 말은,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빠진 아내 하와가 권하는 대로,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말씀을 불순종해서 선악과를 먹는 순간, ‘죗값은 사망’이기에 아담과 하와에게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절망적인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아담이 두려워 떨며 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리고 “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살려 주시려는 사랑의 음성이었으나 아담은 “당신이 만들어 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습니다”라며 점점 악으로 빠져 갔습니다.

‘선’은 내가 한 잘못을 직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내놓고 회개하여 살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은 자는 정녕 죽어야 한다는 말씀대로 저는 죽어야 합니다. 제가 죽음에 이르렀으니 불쌍히 여기소서!”

이처럼 하나님께 자기 잘못을 아뢰어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데도, 아담은 오히려 “당신이 만든 여자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그 여자를 만들어 준 하나님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 말대꾸를 한 것입니다.

자기가 선악과를 먹게 된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는 누구도 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한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더더구나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때라, 요즘은 교회에서도 성도들에게 회개하라는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회개하라고 설교하면 대번에 “이제는 교회도 마음 편히 못 오겠구먼. 세상에 나가서도 고달프고, 교회에 와서까지 회개하려니 고달프네”라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서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라는데 왜 고달픕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이 바로 ‘죗값은 사망’인 죄를 회개하여 죄 사함받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히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지옥 형벌을 벗어났다는 말이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 기쁨을 소유하라는데 왜 회개하라는 소리가 부담스럽습니까?

이처럼 마지막 때는 선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못을 나무라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잘못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나무라서라도 회개하여 죄에서 돌아서게 하여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이 선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0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