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42)] 하나님을 향한 배반에서 돌이키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42)

등록날짜 [ 2014-10-13 11:50:24 ]

말씀대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는 이유 찾아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 중단하고 주님께로 와야


성경 속에 나타난 배반의 양상을 살펴봅시다. 먼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을 보면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축복과 사랑과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솔로몬은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이켜 배반하였고, 그 결과로 비참한 말로를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이 누린 영광만 기억하나 실제로는 아내로 맞이한 무수한 이방 여인들의 영향으로 솔로몬 자신도 우상숭배 하다가 참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왕상11:1~13).

하나님을 떠나 굽은 길로 가지 말라
하나님 말씀대로 가지 않고 굽은 길로 치우치는 것도 배반입니다. 시편 125편 5절에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가지 않고 기어이 다른 길로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시든지 굽은 길로 치우쳐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주님만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역시 배반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10:9). 시험한다는 말은 의심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안 믿어 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로 탄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압제에서 이끌어 내서 홍해를 갈라 건너는 이적을 베풀 정도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스라엘이 어처구니없게도 하나님을 시험하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천지간에 믿을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는데 그분을 이토록 배반해서야 되겠습니까?

끝까지 성령으로 이기라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신으로 마치는 것 또한 배반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는 이런 육신으로 돌아온 배반 행위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지금까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를 체험하고 회개하여 구원 받았으면서도 그 사랑을 부인하고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면 독생자의 피를 흘리기까지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보다 더 배반하는 악한 행위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돌아가는 것은 무서운 배반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육신의 소욕으로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소욕 앞에 육신의 소욕이 압도당해야 합니다.

“나도 옛날에 기도해 봤어. 성령 받아 봤어. 은사 받아 봤어. 그것 별것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 배반자입니다. 개척할 때 제게 권면한답시고 이렇게 말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윤 목사, 나도 개척할 때는 기도 많이 하고 병도 고치고 능력도 행하고 굉장했어. 그런데 한 삼 년 되면 그런 것이 다 없어지고 정상적으로 돌아와. 그러니 괜히 기도 많이 하라고 너무 유난 떨지 마.”

자기에게 나타나던 성령의 능력이 안 나타나고, 자기가 믿던 하나님 말씀이 안 믿어지거든 자기가 성령을 거역하여 육체로 돌아간, 은혜의 배신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데도 자신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기도할 때 응답된다고 믿어지지 않거든 자신이 하나님과 믿음을 가질 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분에게 압도당하고,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사는 사람, 그분을 죽어도 배신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만 사랑하라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행위도 두말할 나위 없는 배반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라고 했습니다.

데마는 바울의 동역자였다가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저버렸습니다. 이처럼 배도자란 세상을 사랑해서 주님을 버린 사람을 말합니다. 미혹은 배도자를 만들려는 마귀의 수법입니다.

우리에게 세상이 틈타지 못하도록 오직 예수 안에서 예수의 피 공로로만 충만해야 합니다. 세상 것이 좋아지거든 ‘아, 내 안에 배도할 기미가 있구나’ 깨닫고 경각심을 지녀야 합니다. 내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도할 끼가 완전히 없어야 합니다.

에베소교회처럼 처음 사랑을 버리는 일 또한 배반입니다(계2:1~4). 신앙 안에서 첫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 변덕 떨지 말아야 합니다. 변덕을 떨면 하나님과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고 하나님께 보호받을 수도 없습니다.

변덕 떨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면 배반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은혜를 배신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다른 길로 간 자는 돌이키십시오.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중단하고 성령으로 시작한 사람은 끝까지 성령과 함께 하십시오.

세상으로 돌아간 자는 다시 회개하고  주 안으로 돌아오십시오. 처음 사랑을 잊은 사람은 다시 그 사랑을 찾아야 합니다. 배반의 자리에서 돌아와 하나님과 동역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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