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47)] 스스로 높아지지 말고 겸손으로 섬기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47)

등록날짜 [ 2014-11-17 23:55:03 ]

항상 죽고자 하면 살고, 낮아지면 높아진다는 정신으로
예수 안에서 말씀 앞에 절대 복종하려는 자세로 살아야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4절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다’고 말하고 뒤이어 ‘자고(自高)하다’며 이를 경계했습니다(딤후3:4).

‘자고하다’는 말은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 스스로 높이 여긴다는 뜻으로 자기과시를 뜻합니다. 남이 볼 때는 거만하거나 교만하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서 48장 29절을 보면 ‘자고’라는 말이 ‘교만’ ‘오만’ ‘거만’과 나란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자고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기를 높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파악하고 처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자고한 자는 사람을 얻지 못한다
저는 평소 격식을 갖춰야 할 자리가 아니면 운동복 같은 편한 복장을 즐겨 입습니다. 때로는 위에는 양복, 아래는 운동복 차림을 할 때도 있고, 그 반대로 입을 때도 있습니다.

또 위아래로 양복 한 벌을 잘 갖춰 입었지만 신발은 운동화를 신고 외출하거나 운동복 차림으로 구두를 신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평소에는 차림새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하게 삽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 줍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저를 알아보고 “이분이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그때부터 오히려 제가 몹시 불편해집니다. 차라리 제 신분을 몰라서 저를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하게 대면해야 전도하기 좋은데 말입니다.

교회 내에서도 목사가 늘 정장 차림이나 근엄하게 보이면 성도들이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혹여 자고할까 봐 옷차림에 늘 신경 쓰며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려고 애써봅니다.

자고한 자는 자신을 상당한 존재로 착각하다 보니 자기 스스로 사람들에게서 격리되고 맙니다. 자기를 높이고 의롭게 여기다 보니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 수하에 있을 때에 무척 거만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빚을 독촉했을 것이며 그들을 업신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다 주인집에서 쫓겨날 신세에 처하자 빚진 자들을 다 불러 들여 주인에게 진 빚을 자기 임의로 탕감해 주니까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을 만큼 거만함이 없어야 하며 어디서든 영혼 구원을 위해 주위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게 하나 되어야 합니다.

자고한 자는 넘어진다 
어떤 성도는 자기를 너무 높여 주님께서 주신 귀한 직분을 하찮게 여깁니다. “목사님, 왜 제게 구역장밖에 안 맡기십니까? 사람 수준에 맞게 일을 시키셔야죠. 구역장이 뭡니까.”



매년 직분이 바뀔 시기에는 이런 사람이 한둘은 꼭 있습니다. 이렇게 자고하여 교만한 사람은 구역장도 제대로 못 할 사람입니다. 겸손하고 낮아져서 주님이 주신 직분에 감사해야 하는데도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는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평지로 떨어진 사람과 그냥 평지에서 넘어진 사람 중 누가 충격을 세게 받았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높은 곳에서 평지로 떨어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은 어떨까요? 그 사람은 넘어지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넘어질 것이 없을 만큼 납작 낮아져야 합니다. 자고할 끼가 전혀 없어야 합니다. 자고하려는 근성조차 갖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전에 부산에 들렀을 때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목욕탕에 간 적이 있습니다. 목욕탕 내부 면적만 해도 1000평쯤 돼 보였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1000명 넘게 들어왔다는데도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목욕탕 안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도 있고, 낮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들 벌거벗으니 신분의 구별없이 다 똑같아 보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설 때에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똑같은 처지입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 공로 앞에 죄를 씻지 않으면 천국으로 가는 대열에 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고할 수 없습니다.

죗값으로 지옥갈 우리가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대신 죽이셨겠습니까? 얼마나 무지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생명을 주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자고할 만한 밑천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처지인지와 자기 분수를 알면 자고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니까 자고합니다.

자고하지 말고 섬기는 자가 되라
마태복음 23장 11~12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삽니다. 또 높아지려 하면 낮아지고, 낮아지려 하면 높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자고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불신자를 보면 불쌍하기에 섬겨야 하고, 믿음 있는 사람도 예수 피 공로로 맺어진 한 형제자매이니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섬기셨듯이 항상 섬겨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3~4절에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고한 사람은 물리치시지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기는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곁에 두시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0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