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51)]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즐거워하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1)

등록날짜 [ 2014-12-17 16:31:47 ]

세상 즐거움과 쾌락은 십자가에 못 박고 절제하며

주님을 모신 자로서 영적 기쁨에 압도당해 살아야

21세기는 물질문명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입니다. 또 세계 전반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이 그리 아쉽지 않은 풍요의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절대자를 찾아 의존하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물질문명의 힘에 의존하고 자기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좇아 살아갑니다.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쾌락적인 것을 찾다 보니 육신의 쾌락은 상상치 못할 만큼 인간 자신을 타락시키고 파괴하여 인생 자체를 폐허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쾌락을 좇기에 급급하다 보니 가정 구성원이 해체되고 가정이 파괴되며, 사회의 윤리·도덕이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성령으로만 이길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쾌락을 좇아 살면 자기 영혼이 망하고 하나님과 원수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성령 받아 주님의 신부로 준비되는 거룩한 신분을 갖고도 육신의 쾌락을 좇아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속마음에 세상 것을 좋아하는 끼가 조금이라도 있거든 그만큼 타락한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중에 마음을 뺏길 만큼 좋은 것이 있다면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을 버릴 정도로 그것을 좋아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세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쾌락에서, 우상숭배에서 우리를 돌이키게 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길 힘이 인간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만이 육체의 소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5:16~17).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이같이 세상과는 극과 극으로 대립하기에 세상이 핍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시당할 수밖에 없고, 세상이 제쳐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잘 어울리던 친구들도 예수를 진실히 믿으면서부터 서서히 멀어집니다. 점점 그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이런 일을 외롭다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세상과 구별될 만큼 거룩함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외로워하지 말고 오히려 영원히 외로울 수 없도록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와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육적인 외로움을 느끼기 전에 영적으로 내 안에 누구보다 크신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고립당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을 큰 낙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기쁨은 베푸는 것입니다. 베풀고 주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고 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고(6:38),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20:35).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 영원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우리가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의 죗값을 갚아 영혼을 구원할 대속제물인 어린양으로 주시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셨습니다. 주님 역시 인간을 구원할 대속물로 자기 목숨을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셨습니다(12:2). 우리도 예수를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 목숨까지도 내주는 일을 기쁨으로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받을 때 기쁨의 극치를 느끼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영혼 구원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줄 때 기쁨의 극치를 맛봅니다

주님만으로 만족하는 신부의 믿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세상 쾌락을 좇는 일은 망할 짓이요, 하나님과 원수 되는 짓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고 쾌락을 좇는 일에 기뻐한다면, 하나님으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요,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육신의 쾌락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이유는 창조자요, 절대자시요, 구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은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성령으로 내 안에 모셨다면, 이 세상 천지 만물을 다 얻은 것보다 억만배 값진 것입니다. 그런 주님이 나의 신랑이요, 내가 그분의 신부라고 할 때, 이보다 더 만족한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신부는 신랑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내가 영원히 모시고 살 신랑으로 알고 그분만으로 만족하는 자가 진정한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는 신랑이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썩어빠진 세상 쾌락, 육신의 쾌락으로 기뻐하지 말고 내 안에 주님을 모신 자로서 신령한 영적 기쁨에 압도당하여 살아야 합니다. 세상 쾌락을 좇아 주님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지 말고, 주님이 주신 것을 최고로 알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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