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55)] 자신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5)

등록날짜 [ 2015-01-14 01:26:17 ]

주님은 자신의 고통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기쁨 줘
육신의 쾌락을 좇기보다 영혼 구원에 더 몰두해야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예수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4). 부자는 이 땅에서 즐기고 연락할 조건이 많습니다.

세상 것으로 부유한 자는 세상 것에 취해 쾌락을 누리려 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천국에는 결단코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말씀 끝에 다시 한 번 세상 쾌락을 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 좇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8~29).

예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결국 순교였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죽음입니다. 믿음이란, 한마디로 육체적인 유익, 보이는 유익을 위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최후에 순교하기까지 오직 주의 뜻 좇기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생축으로 자기를 드리신 예수
마지막 선지자 침례 요한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침례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태어났고, 제사장 사가랴의 독자로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제사장 반열에 설 사람이었기에 유대 백성에게 극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침례 요한은 고생을 자원했습니다. 험한 유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만 먹으며 머물면서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외치며 침례를 주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예수를 소개하는 마지막 선지자로서 사명을 마치자마자 참수형으로 순교하는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례 요한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인류의 죄와 허물을 사해 주시려고 자기 자신을 제물과 생축으로 드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생축으로 드렸다’는 말은 살아 있는 짐승이 죽임당하는 것같이 잔인하게 죽이도록 자신을 내어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소나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쓰려고 잡을 때는 일단 죽인 후에 사체를 처리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죽임당하신 후에 제물이 된 것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땡볕에 노출돼 산 채로 손과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기까지 매달려 신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인류에게 크게 대접받을 수도 있으셨습니다.

예루살렘 궁전에 가서 앉아도 되고, 로마 정부를 전복하고 만왕의 보좌에 앉아도 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죄인 중의 괴수처럼 참혹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육체로 당하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죄가 속함받아 구원받는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고상한 기쁨입니다.

우리도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그로 말미암아 주님이 기뻐할 일이 있다면 나로 기꺼이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해 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의 생애는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모든 영광을 다 버린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먼저 자신을 버리셨고, 제자들도, 선지자들도, 초대교인들도 자신을 버렸습니다. 이 말은 육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버리고 오직 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영혼을 섬기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삶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사도 바울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 학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공회원이요,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로마 시민권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겼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것을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믿었기에 그 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이었다고 했습니다(빌3:7~9).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이 예수와 같은 생애를 산 사람으로 하나님께 발견되기를 바랐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면 그런 그의 심정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바울은 어떻든 예수 안에서 자기의 망할 것을 발견하여 다 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자기 삶이 없고 온전히 예수로만 살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육신의 즐거움이나 쾌락이 있겠으며 정욕이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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