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6)] 하나님 앞에 더러움 없이 정결해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6)

등록날짜 [ 2015-01-20 09:37:14 ]

신령한 영적 기쁨을 맛보면서 죄를 회개하도록 몸부림치며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속에서도 지킬 능력이 있어야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1~5절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때에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죄의 양상을 19가지로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이번 호에는 그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구절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위 구절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듯하나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 자, 믿음이 있는 듯하나 실상은 믿음 없는 자. 거룩한 듯하나 실제로는 거룩과 거리가 먼 자. 의로운 듯하나 불의한 자. 선한 듯하나 악한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속일 수만 있으면 누구라도 속이려 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 외식(外飾)하는 자가 마지막 때에는 많다는 말입니다. 겉으로 아무리 거룩한 척해도 하나님의 눈앞에 부정하다면 이중인격자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이 대단히 거룩한 줄 오해합니다.

주님께서 회개하라선포하신 것은 네 속에 있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을 끄집어내라는 말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한참 동안 회개하고 나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집니다. 나를 복잡하게, 고통스럽게 하던 죄가 예수의 피 공로로 사함받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속이 깨끗하고 시원해졌으므로 심령에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그 신령한 영적 기쁨을 맛보았기에 늘 경건하려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공경이 곧 경건

경건하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입니다. 한자로는 공경할 경(), 정성 건()이니 둘 다 공경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하나님을 공경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의 물과 피를 쏟아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신 줄 확실히 알아야 공경할 마음이 생깁니다.

에베소서 6장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고 했습니다. 자식이 제 부모가 베푼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알고 느껴야 공경할 마음이 싹틉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제대로 알아야 심령 깊은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할 마음이 솟구쳐 올라와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공경에는 반드시 감사한 마음이 따릅니다. 감사한 마음 없이 하나님을 공경하노라 한다면 이는 거짓입니다. ‘경건은 감사가 절정을 이루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실이 없는 자며, 아직 죄 아래 있는 자입니다. 죄 아래 있다면 정결하지 못한 자요, 그만큼 세속에 물든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에 저절로 아버지를 향한 공경심이 우러나옵니다. 자기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인류, 아니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지옥 갈 자를 건지신 그 엄청난 은혜의 분량을 알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자기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기까지 감사하고 싶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어린양처럼 십자가에서 묵묵히 죽임당하시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를 공경하셨습니다. 우리도 나는 죽어도 한 영혼이라도 더 살리려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심정으로 충성하고 전도하여 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경건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다

야고보서 127절에도 경건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을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고백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10). 다윗은 하나님을 속이지 않는, 깨끗하여 겉과 속이 같은, 하나님의 인격을 지닌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결하다는 말은 거룩하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거룩하다는 본질적으로 죄나 흠이 없이 완벽하다는 말이지만, 정결하다는 말은 원래는 죄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로 죄를 씻어 그 깨끗해진 바를 유지하여 더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더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상태가 바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입니다. 이렇게 예수 피 공로에 힘입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이 경건이요, 곧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상태입니다.

 

경건한 자를 하나님은 택하신다

하나님은 이처럼 예수의 피 공로로 경건해진 자를 찾아 택하여 쓰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4:3).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를 택하시고, 그 경건한 자가 부르짖을 때 즉각 들으십니다. 기도 응답은 경건한 자의 몫입니다.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무엇을 맡겨도 아버지 일을 상처 내지 않고 부도내지 않고 잘 해줄 줄로 믿어지는 사람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만 갖추지 말고 내 속에 나를 경건하게 지킬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외모를 보는 분이 아닙니다. 내 속에 진짜 예수의 피 공로에 힘입은 경건의 능력이 있느냐를 보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외모보다 속이 좋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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