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58)] 경건하여 타인에게도 경건을 공급하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8)

등록날짜 [ 2015-02-03 19:57:05 ]

생활 속에서 우리 몸에 철저하게 배도록 만들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채워야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생길 일 중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내용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고, 하나님만 겨냥하는 것이 경건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의 복을 담을 그릇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라
디모데전서 4장 7절에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마치 ‘숙달된 조교’가 될 정도로 하나님 앞에 경건하기를 연습하라는 말입니다. 성경도 많이 읽으면 성경 속 사건이 눈앞에 확 열립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많이 읽어서 내 속에 그 사건을 가진 것처럼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경건도 이렇게 연습해서 우리 몸에 철저히 배게 해야 합니다.

예전에 글로리아예수찬양선교단을 집회에 데리고 다닐 때, 선교단원들에게 신앙뿐만 아니라 일반 예의범절도 많이 가르쳤습니다. 특히 여자 단원들에게는 “집에 돌아가거든 절대로 어머니가 해 주시는 밥을 받아먹지 말고, 너희가 손수 밥을 지어 부모님을 대접해 드려라”고 하며 어머니, 아버지를 존경하고 경외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부모님께 반말하지 말고 깍듯이 존칭어를 써라. 그만큼 성장했으면 이제 어른을 어른답게 대우할 줄 알아야 한다. 경건한 생활을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다”라며 집에 가서 할 행동을 미리 연습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쑥스러워 했지만 배운 그대로 집에서 하다 보니 부모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기특하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자식이 예절을 익혀 경건하게 행동할 때 부모가 기쁘듯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행할지를 익혀 경건하게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기쁘시기에 복을 안 주실 수가 없습니다.

새 신부가 결혼하고 처음 시집에 가서 시부모님께 절을 해야 하는데 한 번도 절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첫날 절하다가 시부모님 앞에서 자빠졌다면 얼마나 민망한 일입니까?

얼마나 예절 연습을 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이 생겼겠습니까? 조금만 미리 예절 연습을 해서 몸에 익혔으면 시집 간 첫날 그런 망신을 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경건을 몸에 익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눈에 보이는 부모를 먼저 공경하며 경건을 연습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하신 말씀은 부모에게 먼저 경건을 연습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연습이라도 해서 ‘네 몸에 경건한 생활이 배게 하라. 아주 네 몸에 젖게 하라. 습관이 되게 하라. 네 삶의 일부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경건한 자로 만들어서 쓰시겠다는 강력한 요구입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않다고 해도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데도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하여 영육 간에 복 받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경건을 요구하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경건하여 이 땅에서 복 받고 영혼의 때에도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이 땅과 내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우리는 절대 경건해야 합니다.

디도서 2장 2절에는 나이 들어서도 경건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나이가 들면 경건성이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늙은 남자로는 경건하라고 명시해 놓은 것입니다. 즉 나이가 들어도 정신 줄을 놓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공경과 경외함이 절대 무너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이 먹어 늙으면, 습관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공경받으려고만 하지 먼저 남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일을 잘 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런 못된 습성을 버리고 나이 들수록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처럼 경건한 자가 하나님께 복 받을 자입니다. 경건 자체가 하나님의 복 받을 그릇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를 찾으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하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는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공급하라”는 말은 우리가 가진 경건은 나만 갖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공급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경건하지 않으면 남에게 경건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 경건해서 그 경건을 성도에게 공급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경건을 공급하지 못하면 결국 성도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외식하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이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오직 경건만 통할 뿐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도 안 통합니다.

우리는 어설픈 행동을 하지 말고 참으로 경건해야 합니다. 겉과 속이 달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경건을 공급하는 자가 되라
빌립보서에도 무엇에든 경건하라고 말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

‘무엇에든지 경건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항상 경건하라는 말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감사와 경건으로, 일할 때도 경건한 태도로, 찬양할 때나 말씀을 들을 때도 경건하게, 기도할 때도 경건하게, 충성이나 전도할 때도 경건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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