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3)] 사랑은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다

등록날짜 [ 2015-02-10 01:56:15 ]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과 무지가 곧 죄의 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만나주셔

 

 

사람들은 보통 서로 마음이 통하고 편한 사람들끼리는 허물없이 사이좋게 지냅니다. 또 서로 마음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벽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있는 벽도 자기가 가진 사랑의 힘으로 허물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장벽에도 부딪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어떠한 관계도 초월하며,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자에게 찾아갑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는 것이기에 어떤 인종이든,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 신분이 어떠하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주십니다(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해서는 죄 값, 곧 사망을 갚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가로막혔던 죄의 벽을 허물어주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8)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벽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벽을 허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마음에는 사랑이 전혀 없는 사람, 곧 바리새인과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으나 속으로는 이기주의가 가득하여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이웃과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더욱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사람들, 예수님의 손에 거친 못을 박던 사람,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던져 찔렀던 사람도 사랑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를 죽이는 자들 앞에서도 절대로 가로막거나 제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받기를 희망하는 자마다 죄의 벽을 허물어 주시며 환영하십니다. 그 증거로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7~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베풀어주신 신령한 식탁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죄의 벽을 허물고 마음의 문을 그분을 향해 활짝 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너무도 못된 죄를 많이 지어서 양심상 교회에 갈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과의 사이에 벽을 더 두껍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죄를 해결해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진 고통을 참으시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사랑하신 주님의 부르심 앞에 지체 말고 속히 나와야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참된 양심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 앞에 나아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욕의 인간의 양심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려는 은혜의 양심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소유하고 누려야 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담의 정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과 무지, 곧 죄입니다. 우리는 어두움과 무지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著/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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