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59)]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야 경건이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59)

등록날짜 [ 2015-02-10 22:10:58 ]

영을 하나만 지으신 것은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서니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디모데후서 3장 5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는 말씀으로 계속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
경건하지 않은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스렸는지를 성경에서 살펴보면, ‘내 신세 생각해서 경건하게 살아야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지 않은 자를 가차 없이 심판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자가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게 하고야 마십니다.

유다서 15절에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수차례 강조한 이유는 가차 없이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경건(敬虔)’이란,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여 엄숙히 삼가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건치 못한 사람을 심판하신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에게 영광을 받거나, 사랑을 받거나, 경외를 받으려는 하나님의 기대를 완전히 끊어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의 홍수 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쓸어 버리기로 작정하셨듯이 기대를 끊는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 하나님께서 극단적으로 조치할 수밖에 없게 하는 무서운 작태가 경건치 못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내 신세 생각해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경건함으로 사는 기쁨
저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과 거룩함으로 주어진 사명을 기쁘게, 복되게 잘 감당하라고 늘 설교를 통해 강조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첫째 하나님과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담임목사도 심히 괴롭기 때문입니다.

목사에게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은 성도들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즐거움이 매우 크기에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우리 인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아들의 죽음은 심히 애통한 일이지만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영혼들을 영접할 때 하나님께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대신 죽일 만큼 죄로 멸망할 인간을 긍휼히 여기셨고, 아들의 핏값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목사도 마찬가지로 목회 사역을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할 만큼, 육신적인 생활을 포기할 만큼 성도들이 경건한 삶을 살아서 영혼이 잘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지금껏 목회하는 동안 “연세중앙교회보다 더 크고 좋은 교회로 모시겠으니 꼭 와 주세요”라고 청빙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좋은 기회일 수 있겠지만, 저는 그럴 때마다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가난해서 살림이 궁핍하더라도, 자식이 아무리 못났더라도, 그 자식을 내버리고 떠나는 부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 속을 썩이더라도 아비 어미 노릇 그만두고 자식을 떠나는 부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가 단 한 명 남는다 해도 끝까지 그 성도를 지킬 것입니다. 복음으로 낳았으므로 그는 영적인 내 자식이니까요.”

아무리 속을 바글바글 썩여도 부모는 자기 자식이 불쌍해서, 그 자식을 책임져야 하고 뒷바라지해 줘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자식을 버리고 떠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지 못하시는 것처럼 절대로 뗄 수 없는 것이 성도와 목사의 관계입니다.

말라기 2장 15절에도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영을 하나만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
하나님은 경건한 자 편입니다. 하나님은 지구의 수많은 인구 중에서 늘 경건한 자 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조건 경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즉 아무 이유 없이 공경을 받고자 하지 않으십니다.

공경을 받으실 만큼 먼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주시고, 호흡을 주시고, 건강을 주셔서 살게 하시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주시고, 가정과 자식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영혼이 영원히 지옥에서 죽을 줄을 아시고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향한 고마움과 감사와 존경심을 당연히 지녀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인격을 주셨습니다. 인격에는 지(知), 정(情), 의(意)가 있습니다. 먼저 지식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 나는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곧이어 감정적으로 ‘이 은혜를 어찌할까? 아, 가슴 저리게 감사하다’로 표현하게 되고, ‘내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었으니 고마워서 어떻게 하나? 이제는 주님께 감사하며 충성하며 살아야겠다’라며 뜻을 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격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영을 하나만 지으신 것이 이런 인격을 가진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 때에 경건치 못한 자는 망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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