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65)] 진리를 대적하려는 근성을 바꾸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65)

등록날짜 [ 2015-04-02 10:26:56 ]

육신의 소욕은 성령을 대적하고 반항하며 도전하니
건방진 행동을 버리고 순종하여 날마다 새로워져야


지난 호에 이어 디모데후서 3장 8~9절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는 말씀으로 계속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부패하게 하는 자는 바로 사단 마귀 귀신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양심에 화인 맞았다’는 말은 곧 ‘마음이 부패했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부패한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싱싱하나 차츰 변해서 부패합니다.

시험 들면 마음이 부패한다
‘마음이 부패하다’는 의미는 ‘쓸모없어졌다’ ‘회생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한번 시험 들면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시험 들어 부패한 사람들은 예배드리는 횟수가 줄어듭니다. 겨우 주일에만 교회에 옵니다. 그것도 믿음으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옵니다. 사사건건 혼자 고립되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비하다가 점점 정면으로 하나님께 도전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나와 보시오?” 결국 하나님을 부인하고 맙니다. “나도 옛날에 믿어 봤어, 다 소용없는 짓이야.”

일단 썩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순식간에 구제불능이 됩니다.

반면에 우리는 믿음 안에 있어서 날마다 하나님 말씀 듣고 은혜 받아 죄를 회개하여 영혼이 소생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말씀 안에 있는 생명력으로 부패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진리에서 떠나 진리를 대적하고 반항하고 도전하는 건방진 행동을 버리고 진리 편에 서서 순종하여 날마다 내 영혼이 소생해야 합니다.

부패한 자는 돌이키지 못한다
‘마음이 부패하여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가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딜 정도로 가슴 아픕니다.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는데 어찌하여 믿음에 관하여서 버림받은 자가 되었을까요? ‘믿음에 관하여 버리운 자’라는 말은 자기는 믿고 싶어도 안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 마음이 생명에, 거룩함에, 믿음에, 주님의 뜻에 어떤 작용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공동묘지에서 송장더러 아무리 일어나라고 소리쳐도 꼼짝달싹하지 않듯이 부패한 자는 생명이 파도치는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들려줘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패해서 냄새만 날 뿐입니다.

한마디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한 우매한 자들이 바로 부패한 자입니다(사6:9~10). 이런 사람들을 보면 목회자로서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방법이 없나요? 저들은 부패한 저대로 멸망해야 하나요? 믿음에 관하여 버리운 자가 되어야 하나요?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저런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잖아요?”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목회자의 마음만 아플 뿐 부패한 자는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애타게 전해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쓰레기 더미처럼 그저 악취를 풍기며 썩어 갈 뿐입니다.

진리에 대적하려는 근성을 돌이키라
디모데후서 3장은 말세에 나타날 현상을 말씀하며 우리에게 경계합니다. 말세에는 믿음이 더욱 부패하여 더더욱 돌아설 수 없는 때가 온다고 말입니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복음 증거를 가진 자,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타락하게 해 악착같이 삼키려 합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린 자’는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마귀의 권세를 박살 낸 ‘예수 이름’으로 생명을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습니다. 진리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진리를 대적하려는 생각과 근성이 몰려올 때 우리는 절대 져서는 안 됩니다.

원망이 나오면 감사로 바꿔야 합니다. 싫증 나면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자신을 다그쳐야 합니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찬양으로 바꿔야 합니다. 부패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진리를 거스르는 현상이 나오거든 빨리 진리 편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속상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가도 ‘아, 주님은 얼마나 속상하셨을까?’라고 생각을 돌려 보면 조그만한 일로 속상해하는 저 자신이 참으로 초라하게 여겨집니다. 그럴 때 저 자신을 완전히 돌이킬 힘이 생깁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성령은 곧 진리’라고 했으니(요일5:7),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 육신의 소욕임을 알고 이겨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성령께서 무엇을 하라고 감동했는데 “꼭 그렇게만 해야 합니까? 왜 내게만 감동하십니까?”라고 대적하며 불순종했다면 이는 곧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행복을 발길로 차고, 진리를 대적하는 행동입니다. 이 말은 자기에게 더는 시비나 간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더는 간섭하거나 시비하지 않으면 그는 진리에서 분리된 자입니다. 불쌍하기 그지없습니다.

“주여,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안에서 감동하시고 역사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절대 믿음에서 버리운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세에 돌이킬 수 없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 이런 고통이 자신에게 생기지 않도록, 믿음에서 부패하여 버리운 자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항상 청정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2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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