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11)]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의 힘
이웃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 주는 능력 넘쳐야

등록날짜 [ 2015-04-27 13:14:56 ]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잔인한 고통을 당하고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부모와 형제, 골육친척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자원이 넘쳐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웃 사랑을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말로써 상처받게 하고 오해하게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며, 인격적으로 모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언어, 행동, 표정 하나까지도 사랑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질서 안에서 열려 있습니다.

사랑이 풍성한 사람은 이웃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이웃의 허물을 덮어 줍니다. 사랑의 힘은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불평불만이 생기고 모두가 나보다 못한 사람처럼 보여서 시비하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불만과 불평이 생긴다면 자신 역시 그 사람과 똑같이 사랑이 없는 사람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상처받지 않는 사랑의 힘

예수께서는 자신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인간을 원망하지도 상처받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수를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기도 하고, 창에 찔려 죽기도 하고, 사지가 찢겨 죽기도 하고, 온몸의 살갗이 벗겨져 죽기도 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그들은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사랑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불쌍히 여길지언정 절대로 상처받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처를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험에 드는 이유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내 안에 있는데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 사랑을 누릴 줄 모르고, 하나님이 주신 영생의 큰 가치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 채 무기력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바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성도를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를 향해 미운 짓을 하는 성도들이 더러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성도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만약 상처를 받았다면 그에게 사랑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자신을 바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도록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큰 빛과도 같습니다. 그 사랑의 빛 앞에 자기의 모습이 정확하게 드러날 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분량으로 은혜받은 자는 어느 누구든지 겸손하고, 항상 감사하며,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압도당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와 감사, 충성과 전도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빼고는 어떤 것으로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시험에 들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망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영생을 확보했다는 그 사실로 말미암아 절대 좌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주는 사랑의 힘

지방에서 집회를 마치고 교회로 출발했는데 길이 어찌나 막히던지 오히려 걸어가는 편이 나을 정도였습니다. 교회에 가서 철야예배를 인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차 안에서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 속에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면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 없이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시키고 마음을 편히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보고 싶고 하나님 말씀을 직접 전하고자 하는 진실한 사랑이 있기에 그토록 마음을 졸였던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이처럼 표현하고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랑의 밑천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기에 물질도, 시간도, 목숨도 주님 앞에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은 모든 것을 내놓는 힘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셨으므로 품속에 있는 독생자를 내놓으셨습니다. 사랑은 독자라도 내놓을 수 있는 힘이며, 사랑은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힘입니다. 사랑에는 이토록 가장 귀한 것도 내놓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바칠 때에 이삭이 내 아버지여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22:7) 하고 물을 때 아비인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어 장작 위에 올려놓을 때 이삭이 힘으로는 충분히 아브라함을 밀치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묵묵히 순종하여 장작더미 위로 올라갔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이삭이 어찌 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의 목을 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고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내놓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한 아브라함과,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에게 순종한 이삭을 통해 예수께서 오시는 믿음의 길이 보이게 된 것입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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