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69)]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생활만은 변함없어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69)

등록날짜 [ 2015-04-29 01:54:07 ]

신령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영혼의 때에 크게 엇갈려
세상에서 아무리 큰 문제가 있어도 항상 앞으로 나아가야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직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내리실 때, 애굽 술객(術客)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당하는 때가 이르면 진리를 거슬러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얀네와 얌브레가 그랬던 것처럼 곧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난다고 말하면서 과거 일을 거울 삼아 절대로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성경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지금’ ‘내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자는 육신을 입었기에 누구나 똑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신앙의 코스로 가다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자빠져서 좌절하고 낙망하다가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을 맞닥뜨릴 때 이를 악물고 뛰어넘어 무사히 목적지에 이릅니다.

신앙 길에서 중도에 낙오하고 탈락한 자와 신령한 목적지에 도달한 자는 희로애락이 영원한 차이로 엇갈립니다. 바로 지옥과 천국이라는 차이입니다.

변함없는 신앙생활
우리는 신앙생활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을 예수로 뛰어넘어야 합니다.

육체의 향락과 쾌락이라는 올무에 걸리면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점점 더 세상으로 이끌려 갑니다. 말세에는 육신의 소욕에 강하게 지배받아 자기 영혼이 ‘고통당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현듯 말세가 닥쳐와서 세상 환경이 다 뒤집어지고 무너져도 영적생활만은 절대로 변함없어야 합니다.

KTX가 서울에서 대전을 향해 출발했는데, 삽살개 한 마리가 철로 옆에서 아무리 짖어댄다고 기차가 멈출 리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아무리 무서운 핍박이 와도 그것들 때문에 신령한 영적생활을 제한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능히 뛰어넘을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들에 제한받지 않을 영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영적생활하는 일이 제한받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환경 속에 장애물을 놓아 영적생활을 방해하는 악한 영의 궤계를 보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환경에 어떤 변화가 와도 신앙생활은 그것에 좌지우지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유리병을 마개로 꽉 닫아 바닷물 속에 던졌다고 합시다. 그 병은 바다 위에 둥둥 떠서 물결치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것입니다.

바다 위를 아무리 오랫동안 떠돌아다녀도 병 속에 물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암초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박살이 나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세상 살면서 아무리 거친 파도가 나를 덮쳐도, 환경이나 기분으로 뒤흔들어도 절대로 믿음이 깨져서는 안 됩니다.

물고기가 살았을 때는 은비늘을 반짝거리면서 마음대로 바닷속을 헤엄쳐 다닙니다. 하지만 죽으면 썩어서 물에 둥둥 떠다니다 흉물스럽게 변해 곧 사라집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나, 죽은 것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이 내게서 살아 운동력 있게 역사하지 못하면, 나는 육신의 생각과 세상에 떠밀려 다니고 맙니다.

파도에 밀려 바다 위를 떠다니다 산산조각 나 버린 유리병처럼, 우리의 믿음도 환경에 밀려 침체하고 낙오해 결국 탈락하고 맙니다. 그러면 그 영혼의 신세는 어찌 될까요?

영원히 고통받는 저 지옥형벌에 처해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오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해 자신 있게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나갈, 강력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애물을 이겨 내는 신앙
믿음은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증거하는 목회를 하면, 갖은 핍박과 환란을 당합니다. 모두 이겨 내야 합니다.

중상모략을 당하고 누명을 뒤집어써도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쩌다 저렇게 불쌍한 사람이 됐나’ 주님 심정으로 긍휼히 여기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그 사람이 이긴 듯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날에는 그런 사람은 구제불능이 되고 맙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가장 강력한 비결은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는 ‘선한 싸움’입니다. 당장은 ‘선한 싸움’이 불리해 보입니다. 온갖 중상모략과 핍박이 올 때 법적 수단을 동원하거나 변명하고 싶지만,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끝까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그 싸움을 대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내가 앞장서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앞장세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얀네와 얌브레’처럼 하나님 면전에서 진리를 대적하다 ‘믿음에 관해서는 버리운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에서 언급한 ‘말세에 닥쳐올 수많은 고통’을 당장 눈앞에 있는 육신의 쾌락, 향락으로 말미암아 초래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차 당할 불의와 고통을 수태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 육신의 즐거움에 빠져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일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의 장애물을 거뜬히 뛰어넘어, 거룩하고 신령한 주님의 뜻을 따라 가장 아름답게 승리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세에 고통당하는 때가 이르렀을 때, 어떤 것과 싸울지라도 지지 않고,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영적인 환경만은 끊임없이 지키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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