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80)]척박한 가시밭길이라도 주 예수와 함께라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80)

등록날짜 [ 2015-07-22 17:29:46 ]

믿음은 어떤 환경과 고난에서도 절대 변치 않는 것
영혼의 때에 영원한 보상이 올 때까지 참고 견뎌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때부터는 절대로 믿음에 후퇴가 없어야 합니다. 믿음에 전진만 하는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에는 후퇴가 없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스데반이 자기 동족 유대인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고 전하다가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때, 그에게 하늘에서 그의 죽음을 보상받는다는, 하늘에서 영원히 산다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의 죽음은 헛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믿음이 확실했기에 영혼이 육신을 떠나기 전에 이미 “하늘 문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고백하고 순교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7:56).

믿음을 담보로 자기 목숨을 주를 위해 쓸 수 있는 믿음이야말로 최고의 영혼의 때를 맞이할 신령하고 엄청난 기업입니다. 이런 큰 믿음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고, 입으로만 믿음을 외치는 사람은 바울과 같은 믿음의 경지에 도무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히브리서는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지만, 문맥과 정황으로 살펴볼 때 사도 바울이 쓴 것이 확실시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믿음을 기쁘시게 여기시는 줄 알았기에 바울은 믿음이라는 엄청난 가치를 자기 기업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소망과 믿음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척박한 가시밭길을 걸어갔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수없이 좌절했을 그 험한 가시밭길을 왜 걸어갔을까요? 걸을수록 돌밭이요, 걸을수록 고통인 길을 말입니다.

고난이 클수록 장차 하늘에서 자기에게 더 큰 영광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고 확실히 믿었기에 그런 고생도 자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바울의 믿음은 이제 자기 영혼의 때의 부유를 위하여, 영혼 구원이라는 주님의 신령한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어떤 압제와 핍박을 당할지라도 그 하늘의 소망 때문에 견디는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강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딜 때, “주님이 나를 건지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 있어야 신령한 결과를 만난다
제가 어릴 때 다녔던 교회는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이 귀신에게 하는 우상숭배임을(고전10:19~22) 알기에 절대로 제사 지내지 않았고, 유교사상에 찌들어 제사를 조상에 대한 예(禮)로 믿는 가족들은 이들을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에서 영적 투쟁이 벌어졌는지 모릅니다. 어떤 집은 그 투쟁에 져서 끝내 예수를 못 믿고 말았습니다. 어떤 집은 마침내 이겨서 예수를 믿는데, 그런 집은 모질고 잔인하게 핍박하던 남편까지 구원받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줄로 분명히 믿는 사람만 그 무서운 투쟁에서 견딥니다. 믿음이 없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예수 믿다가도 그만두고, 믿음에 파선(破船)해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고 맙니다.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믿음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현실이 믿음 안에 있게 하라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핍박 중에 견뎠다” “가난 중에 견뎠다” “옥중에서도 견뎠다” “매 맞음을 견뎠다” “상 주심을 바라보며 견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주님 나라에 빨리 갔으면 좋겠다” “세월이 속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주님이 어서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언뜻 들으면 믿음 있는 말 같지만, 현재의 고난을 달게 받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으려는 속내요,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푸념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현실에서 도피하려 하지 말고, 현실이 믿음이 되게 해야 합니다. 현실이 믿음 안에 있음을 확실하게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을 믿음 안에 있게 해야 합니다.

교회당에 왔다고 믿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 확실히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사지가 찢겨 죽임당할지라도 주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육신은 그런 극한 고통을 당하면서 금세 죽지만,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세세토록 죽지 않고 고통만 당하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누가 자기 영혼을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두겠습니까.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확실히 믿으면 어떤 고난과 환난과 고통이 와도 믿음에서 떠날 사람은 없습니다. 지옥과 천국의 실존을 망각하면, 그 순간에 지옥 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만약 예수 믿느라고 죽도록 고생하고,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가정이 파탄 나고, 생명을 위협받고, 결국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시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온갖 손해를 본 사람과 예수를 적당히 믿으면서 교회에 왔다 갔다 한 사람이 하늘에서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박살이 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극한 고난도 능히 견디는 것은 이 고난 끝에는 주님이 갚으시는 영광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 없이 어떻게 믿음의 가시밭길을 갑니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는 공평한 분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믿음도 심은 대로 거둡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이 나만 고달프게 하시느냐고 절대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왜 내게만 더 큰 상을 주시느냐고 묻겠습니까. 공평하신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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