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 (23)] 하나님의 사랑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
더 충성하고, 기도하고, 전도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해야

등록날짜 [ 2015-07-27 14:41:40 ]

자식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기가 부모에게 무엇인가를 해드렸다고 자랑하기 바쁩니다. 형님이 많이 드렸다, 아우가 많이 드렸다 은근히 자랑하면서 자기가 어느 정도로 효도했는지 서로 드러냅니다. 그럴 때면 부모는 그래 맞다. 너희가 효도해 주니까 이렇게 행복하지라며 자녀들이 준 것이 많든 적든 고마워하십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 자식을 죽을 각오로 피 쏟아 낳아 주셨고,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이며, 온갖 고생으로 자기 인생을 다 바쳐 키웠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웠는지 그 수고한 바를 낱낱이 열거한다면 자식은 그 사랑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도 없습니다. 흘러간 부모의 인생 전부가 다 자식을 위해서 희생된 것입니다. 자식은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입고도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 부모에게 해 준 것만을 계산하고 자랑합니다. 이 자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혹시라도 내게 그런 모습은 없는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내가 이래 봬도 전도를 얼마나 많이 한 사람인데”, “나는 우리 교회의 모든 충성을 맡아 놓고 하는 사람이야라며 자기 의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전도하고 충성 좀 했다고 주님이 주신 은혜는 계산하지 않고 자기가 한 일만 드러내고 자랑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내가 한 것을 계산하기보다 주님에게 받은 헤아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충성한 일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합니다. 이처럼 주님 주신 은혜 앞에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사람 앞에 드러날까 봐 오히려 조심합니다. 측량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았기에 주님을 위해 아무리 많은 충성을 했어도 자랑할 용기가 없고 주님에게 받은 은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전1:31).

하나님께서는 죽게 된 우리를 살리려고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죄를 담당케 하시고 우리를 괴롭히던 질병과 저주와 문제와 모든 고통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은혜받은 우리가 하는 충성은 지극히 당연하며 자랑할 만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충성하고 기도하고 전도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해야 합니다. 결코 자랑하거나 내세울 일이 아닌데도 나부터 표창장과 감사패를 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지만물을 주시고, 죄를 사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 주시고, 예수의 이름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만물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천국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 큰 은혜를 입었으니 감사와 기쁨과 절대적인 겸손으로 충성해야 당연합니다.

철든 사람은 주님 앞에 자기 전 재산을 바치고 자기 생애의 단 하나인 목숨까지 내놓을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의가 될 것도 없습니다. 주님에게 받은 은혜가 한량없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사랑받은 자의 증거가 바로 충성이요, 감사요, 겸손입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목숨을 내놓고 순교한 제자들에게 표창장을 준 사실이 있습니까? 잘했다고 박수 친 사실이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진실하고 희생적인 본질 앞에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하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오해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부분 교회가 여름성경학교처럼 큰 행사가 끝나면 수고한 교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하고 격려하며 치하합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하나님 앞에는 송구스러울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아무리 충성해도 부족합니다. 또 주를 위해 일한 것이 있다면 주님이 기억하시고 영혼의 때에 면류관을 주시므로 그조차도 주님께 감사할 조건입니다. 찬양대도, 교사도, 그 어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6:54~55)라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셨습니다. 모든 충성에서 사람 앞에 칭찬받거나 인사받으려는 생각이 있다면 마음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다른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신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요, 자기 영혼의 때에 누릴 기업을 소유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워 놓고 키워 준 대가를 요구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은혜받은 분량만큼 내놓으라고 절대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더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생애를 다 찢어 바쳐 가며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제자들이 목숨을 다 찢어 이웃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장악하시고 지배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굴레 안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도록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정복당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감사하며 살되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며, 위대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도록 감사 안에서 그 은혜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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