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81)]영혼 구원을 위하 자신을 포기해야 한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81)

등록날짜 [ 2015-07-29 00:31:14 ]

지옥 갈 영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리 내려놓아
장차 하늘에서 받을 영광을 생각하며 끝까지 인내해야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 때문에 자기가 가진 모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바울은 그 시대에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 당대 최고의 율법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 바리새인, 공회원, 로마 시민권자 등 모든 면에서 대단한 배경을 가졌습니다.

그런 바울이 나사렛이라는 시골 출신이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를 하나님께서 대속제물로 보내신 구원주 메시아라고 전파하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는 믿음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6~27).

바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권한과 권리를 포기하고, 그 대단한 학문과 지식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전하는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온갖 고난을 당하며 복음을 전파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 교회를 세우고 옥중에서도 교회를 걱정하며 서신으로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피를 흘리며 순교로 생애를 마쳤습니다.

예수 몰라 죄로 지옥 갈 영혼 구원을 위해서, 편히 잘살 수 있는 권리를 다 포기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장차 하늘에서 받을 영광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소망이 넘칩니까? 믿음은 남들은 모르지만 이미 하늘의 상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미 실상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믿음으로 가진 부유를 누가 빼앗아 가겠습니까? 차라리 목숨은 빼앗아 가도 하늘의 부유는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그냥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내놓은 것입니다.

고난받기로 작정한 자
이처럼 온전한 믿음, 부도나지 않는 믿음,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내놓는 믿음을 가진 바울은, 자기 육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려 작정한 대단한 믿음을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밝혔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사람들은 남들 때문에 고난받으면 원망이 대단합니다.

“너 때문에 고난당해서 괴롭다. 제발 이 고통을 안 당하게 할 수 없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이 기쁘다”고 고백합니다. 어디에서 그런 기쁨이 나올까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 때문에 너희 영혼이 예수 믿어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 형벌의 멸망에서 구원받았으니 네 영혼이 잘되고, 나는 너희 때문에 받는 괴로움 때문에 하늘에 상이 있다’.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은 너희는 구원받아 좋고, 내게는 상이 있으니 좋고, 일거양득이라는 말입니다.

이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자기 육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기로 작정했다, 고난받기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 믿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려고 작정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구원받아 신앙생활 하면서도 자기는 그저 편하고 행복해지려고만 합니다. 고난이 닥쳐오면 어떻게 해서든지 모면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예수 믿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하늘에서 상 받기를 바라는 소망이 확실히 있습니다. 이런 소망은 자기 스스로 심지 않고는 그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고 나서 바라는 소망은, 사람들에게 대접받고, 행복해지고, 부유하게 살고, 많은 사람에게 칭송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복음 전할 때에 당하는 모든 고난을 말합니다. 바울은 육체를 가지고 주를 위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고난받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믿음 없이 “고난받기로 작정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난받기로 작정했다”는 말은 보통 각오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가 없다면 믿음의 실상이 없는 것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강요당할 때, 죽을 각오로 핍박과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다가 얼마나 많이 순교했습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기독교인이 국민의례라는 핑계를 내세워 신사참배를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말할 때는 “예수의 남은 고난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우노라”는 바울의 말을 명심하면서, 내 믿음이 구경거리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보실 때 “야! 너 정말 믿음 있구나!”라고 확실히 인정하실 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한 계획에도 믿음을 갖고 전 재산을 털어 목숨 걸고 착수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늘의 보화와 보물이 확실히 있는데도 주를 위해 전 재산 한번 털어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 사업하는 만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투자가 없다면, 믿음이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없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전 재산을 털어놓으면 하나님이 열 배, 백 배 큰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시행한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딤후4:7~8).

이처럼 확실하게 믿고 가는 겁니다. 이 믿음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그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확실한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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