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82)] 참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소망이 넘친다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82)

등록날짜 [ 2015-08-06 10:12:44 ]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으면
반드시 그 믿음의 결과는 영혼의 때에 상으로 나타날 것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에 당할 일을 상세히 말한 후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3:10~11).

이런 말을 한 것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 주를 향한 자기 신앙의 발걸음을 그대로 본받아 믿음의 경주에서 꼭 승리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사도 바울이 말한 ‘오래 참음’에 관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셔서 자신이 지은 천지만물을 주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배은망덕하게도 첫 사람 아담 때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도전하고 불순종하며 온갖 죄를 짓다가 그 죗값으로 저주와 사망과 지옥 형벌을 피치 못할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멸망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사망’인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아 주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를 보내 인류 모두 그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보다 더 오래 참으시는 분은 없습니다.

철없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계시면 나와 보라”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하나님의 원수가 돼도 그가 숨지기 전에 주께로 돌아와 구원받기를 애절히 바라십니다.

그런 진실한 참음은 어디서 나올까요. 바로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는 힘입니다. 그다음으로 견디게 하는 힘은 소망이고, 그다음은 믿음입니다. 사랑과 소망과 믿음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는 강한 힘입니다.

집을 떠난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참고 기다리는 아버지에게는 사랑의 힘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온갖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를 구세주로 전한 데는 소망의 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얻고 그 독자를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까지 변개하지 않고 오래 참은 것은 믿음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는 데는 이처럼 사랑, 소망, 믿음이라는 힘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이후로 범죄한 우리 인간을 오래 참으시는 것은 사랑의 힘이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무제한 참으시는 속없는 분으로 오해하면 큰일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참아 주시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참으시는 기한은 언제까지인가요? 바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시기까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육신이 이 땅에 있을 때까지입니다. 그때까지만 참으십니다. 우리 육신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날, 예수의 피 공로로 죄 사함받지 못한 영혼은 그 죗값으로 영원히 지옥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기회요, 우리가 믿음을 얻을 기회요, 우리 영혼의 때를 위해서 축복을 무제한 준비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주 뜻 이뤄질 때까지 참아라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인간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오랜 세월 참고 기다리셨는데, 사람은 자기 목숨이 끝나기까지 한평생 참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아니 하루, 한시도 참지 못할 때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세에는 오래 참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오래 참아야 하는 기한은 언제까지일까요?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때까지입니다. 내게 믿음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래 참아야 합니다. 내게 사랑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게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래오래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말세에는 핍박과 환란과 고통이 심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믿는 자가 믿는 자를 잡아서 넘겨주고 죽이고 시험에 빠지게 할 때는 참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닌, 믿음의 인내를
그런데 참는 데는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고, 참지 않아도 되지만 ‘믿음으로 참는’ 때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조선 500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을사조약을 맺어 우리나라를 손아귀에 움켜쥐었습니다. 강제 조약을 맺어 국권을 뺏으니까 곡식을 수탈하고, 생때같은 자식을 군인으로, 위안부로 강제 징집하고 재산을 공출해 갔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참고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참을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참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6.25사변이 터져 4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고 3개월 만에 대구와 남부 지역 일부를 제외한 남한 전역이 공산당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때 동네마다 빨갱이들이 들어와서 잔인하게 양민을 죽이고 집에 불을 싸질러대고 온갖 것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했습니다. 이런 경우 역시 못 견뎌도 어쩔 수 없어서 참아내는 견딤입니다. 지옥 역시 참혹하고 처참한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중에 견뎌야 하기에 ‘멸망(滅亡)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세에는 ‘오래 참으라’고 할 때의 그 참음은 ‘못 견뎌도 견뎌야 하는’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오래 참음’은 나 자신의 신앙의 의지에 따라 참을 수도 있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지만, 믿음으로 참아라, 견디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믿음으로 참을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내 영혼의 때에 상급이라는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5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