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 (32)] 이웃에게 주님 사랑을 반드시 전해 주어야

등록날짜 [ 2015-10-05 14:18:20 ]

말세일수록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베풀지는 않아

목숨까지 내어 주신 주님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부모는 자식이 아직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자식을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부부는 자식을 책임지려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하신 말씀처럼 직분을 맡은 자는 맡은 영혼을 사랑합니다. 섬김에 무관심하던 사람일지라도 직분을 맡는 순간부터 맡은 영혼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합니다.

과거에 미워하던 사람도 사랑스럽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직분은 사랑을 위한 책임이기 때문에 맡은 영혼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진실함으로 감당합니다.

직분은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인간 속에는 하나님과 같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만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에 직분에 책임감을 느끼면 내가 맡은 사람이 타락할까 봐, 나 때문에 실족할까 봐, 혹시라도 시험에 들까 봐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처럼, 스데반과 제자들처럼 아버지, 저들이 몰라서 그렇사오니 저들의 죄과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맡은 자가 감당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사랑의 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예루살렘 사람과 유대 사람, 사마리아 사람과 땅끝까지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전도는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찬양하고 교제하며 기도만 했습니다. 주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하셨지만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답답하신 하나님께서는 큰 환난으로 그들을 흩어 놓으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고 기독교에 엄청난 핍박이 오자 예루살렘교회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흩어 놓으시기까지 이웃 영혼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1~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데, 왜 우리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할까요?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이나 사랑을 베풀지 않는 사람 모두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자들입니다. 사랑은 내가 희생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사랑하려고 우리가 지음을 받았고 사랑하려고 우리가 살고 있으니 이웃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면 특별한 사람만 건져 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해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가 넘어져 다쳤다면 누구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몰라 멸망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도 마땅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일로 착각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많은 불신자가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랑하심을 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창조자요,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마땅하지 아니한데도 하나님은 마땅하게 여기십니다. 이처럼 사랑은 주는 자가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줍니다.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랑하심을 그처럼 마땅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것도 마땅하고 받은 사랑에 대접하는 것도 마땅할 만큼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랑을 나눠 주어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3~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속에 사랑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통해 사랑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랑하는 자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도 사랑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 대신 죽었다고 할지라도 영혼을 살려 내지 못하는 사랑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대신해 죽었다고 해도, 그 사랑으로 남편의 죄를 없앨 수 없기에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어미가 자식을 낳아 평생을 공부시키고 많은 재산을 물려주며 사랑했다고 해도 자식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면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다. 온전한 사랑은 죄 사함받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기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랑이 이루어지고 이웃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려면 예수라는 복음을 전해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54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