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없는 열애(熱愛) (37)] 내 모든 것을 나누며 누리는 사랑

등록날짜 [ 2015-11-16 16:05:19 ]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열어놓은 길

많은 사람에게 전하여 맡긴 사명 잘 감당해야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돈 때문에 싸우고, 자존심 때문에 싸우고, 자기와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싸웁니다. 그러나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존심을 포기하고 남을 좀 더 배려한다면 싸울 일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재산과 목숨을 포기하고 종처럼 나를 수종 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면,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고 나를 섬기려 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과 원수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목숨과 재물과 모든 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을 위해 값지게 쓰는 사람은 누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5:39~42)

이렇게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사람과 어찌 싸움이 되겠습니까? 사랑은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벽이 없고 담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은 벽이 없고 담이 없으며 영원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죄라고 하는 막힌 담을 헐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의 사랑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구해야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계속 쌓아 두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갖고 있을수록 나눠 주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수학은 공식을 통해 답을 씁니다. 그러나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답을 씁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있는 사람은 행동으로 사랑을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자기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조금만 옆 사람이 상처를 주면 대번에 성질을 부리고 얼굴색이 달라지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자기 속에 사랑이 없고 육신의 소욕으로 가득해 자기가 가진 밑천이 나오는 행동들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 없는 언어와 행동에서 얼른 자신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남을 용서하고 품을 만한 사랑이 없음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한 것은 독생자까지도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이기에 인간의 도덕과 지식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인정과 애정과 감정 안에서 박애주의의 분량에서 행해지는 아무런 능력 없는, 불가능 앞에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인본주의적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있었던 사람의 생각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 어느 누구의 어떠한 사랑도 영생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으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주님의 사랑으로 능히 죽을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치료받고, 저주받은 자가 자유를 얻으며, 비록 이 땅에 살고 있어도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8:21) 하고 묻자 주님께서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18:22)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칠십 번 용서해 줄까요?” 하고 물었다면 아마도 주님은 칠백 번씩 칠십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이만큼 사랑은 제한 없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섭섭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웃과 얼굴을 붉히고 싸워댑니다. 또 지난날의 잘못도 쉽게 들춰냅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의를 내세우는 인본주의를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사랑의 사람, 용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라

저는 설교할 때마다 그 시간의 설교가 내 인생의 마지막 설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강단에 섭니다. 그 시간에 내 인생이 마감된다는 각오로 후회 없는 설교를 하려고 매 시간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내일이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에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다가 왔노라고,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다 왔노라고,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유감없이 드러내다가 왔노라고 주님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영혼의 때나 육신의 때에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도 이 땅에 두시는 이유가 바로 이웃을 사랑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해 이 땅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은 하지 않고 육신의 소욕대로만 살다가 간다면 하나님 앞에 무슨 면목으로 서겠습니까? 그러므로 최고의 후회 없는 삶은 바로 주님처럼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계속>


제한 없는 열애

윤석전 목사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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