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 악한 자에 속하여 자신을 죽이지 말라
‘마지막 때는 이러하니’(105)

등록날짜 [ 2016-01-18 20:52:05 ]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에 속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선한 일을 도모해야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예수 믿는 믿음’에서 끊어 놓는 자가 바로 악한 자입니다. 그런 악한 자가 당할 최후의 심판은 비참하고 참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속여서 예수 믿는 믿음에서 끊어 놓는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악하게 보셨으면 그들을 잡아 산 채로 유황불에 집어 던진다고 말했겠습니까?(계19:20)

 
우리를 죽이는 악한 영
‘속이는 자’ 역시 악한 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한마디로 속이는 자입니다. “이렇게 해야 구원받는다” “여기 와야 구원받는다” “이 사람을 믿어야 한다”라며 광명한 천사의 탈을 쓰고 속여서 그리스도인을 미혹합니다.

이단들이 믿음의 사람들을 속이는 데는 공통으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구원받으려면 첫째 날짜를 알아야 하고, 둘째 특정 장소에 가야만 하고, 셋째 구세주인 ‘나’에게로 와야 한다”라는 속임수입니다.

마지막 때는 이 같은 감언이설로 미혹하여 속이는 자가 많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엄청난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이라는 진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단이나 거짓선지자들의 속임수도 경계해야 하지만, 내 속에서 속이는 악한 영의 역사와도 싸워야 합니다. 내 생각이 진리에서 벗어났다면 이는 벌써 내가 진리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악을 도모하지 말고 신령한 의와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과 늘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하는 행위는 영적으로 볼 때 모두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으로, 결국 지옥에 가야 합니다. 자살은 하나님이 주신 목숨을 스스로 끊는 악한 행위입니다.

지나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신앙생활에 점점 무관심해지다가 믿음에서 멀어지고, 결국 예수를 안 믿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자기 목숨을 끊은 자살 행위입니다.

이렇게 영적 죽음으로 몰아넣는 짓이 겉보기엔 자기 스스로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자기 속에서 악한 영이 역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악한 마귀에게 끌려다녀 자기를 죽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내 생각에서 역사하는 악한 자를 예수 이름으로, 예수 피 공로로 강력히 물리쳐야 합니다.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행위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나기 전에 악한 자에게 생각을 붙들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내 멋대로 젊음을 만끽하며 자유롭게 살 텐데 괜히 아버지 집에 붙들려 속박받는구나. 아버지의 원대로 살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차라리 떼를 써서라도 아버지께 유산을 받아 아버지 집을 떠나자. 먼 나라로 가서 내 멋대로 살자.’

탕자는 자기 생각대로 아버지를 괴롭혀 유산을 받아서 그 길로 아버지 집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찾아올 수 없는 먼 나라에 가서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다가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을 지경에 처하자 돼지치기가 됐으나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배불리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때야 탕자는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며 후회했습니다.

방탕한 생각이 자기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줄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때, 나를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불신앙, 즉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생각은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3:12).

육적으로 볼 때는 어떻게 자기 동생을 죽일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악한 마음이 생기면 자기 자식이라도 미워집니다. 처음에는 ‘몇 대 때려서 버릇을 고쳐야겠다’며 매를 들었지만 꾸지람을 듣는 자녀가 버릇없이 굴며 거칠게 반항하면, 감정이 불길같이 솟구쳐 이성을 잃고 자식을 있는 힘껏 표독스럽게 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차!’ 합니다.

누구든지 극한 상황에 처하면 자기도 몰랐던 잔인성을 표출합니다. 가인도 속에서 뿜어 나오는 잔인성을 절제하지 못해서 아우를 돌로 쳐 죽이고 암매장하는 살인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악한 자 마귀에 속하여” 살인을 저질렀다고 영적 정체를 정확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악한 자에게 속하지 말라
우리 육신 자체에 무슨 생각과 의지가 있겠습니까? 악한 것은 육신이 아니라, 육신 속에 있는 소욕(所欲)입니다.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육신이 무엇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육신이 악한 소욕에 붙들리면 마치 꼭두각시처럼 악한 일을 도모하는 데 사용당하고 맙니다. 따라서 악한 생각이 들거든 ‘아하, 내가 또 악한 자에게 도구로 사용당하는구나. 절대 그럴 수 없다’ 하며 악한 자 마귀의 소욕을 강력히 몰아내야 합니다.

마지막 때일수록 내 속에서 올라오는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고 성질 부리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질은 아무 때나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악한 일을 도모하려고 작정할 때 성질을 부립니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절대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곧 내 영혼에게 악을 범치 말라는 말이요,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에서 악을 범치 말라는 말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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