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4)] 이웃과 열려야 하나님과 열린다
‘회개하라’(4)

등록날짜 [ 2016-10-18 11:14:28 ]

예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 인류가 화평하듯
주께 용서받은 우리도 이웃과 화목하고 막히지 말아야


용서받았다면 당신의 이웃도 용서하라
죄를 회개해 예수 피의 공로로 사함받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웃 관계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라는 복수 단어를 사용해 이웃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위로 하나님과 상대하려면 아래로 이웃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가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3~24). 먼저 이웃과 화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웃과 담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도 담이 됩니다. 당신 속에 무엇이든 이웃과 막힌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도 막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열려야 하나님과도 열립니다. 주기도문 첫 구절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나와 너, 나와 이웃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하나님과도 형통합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쭤 보았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마18:22).

이어 예수께서 예화를 하나 들어 말씀하십니다. 종 하나가 제 주인에게서 불쌍히 여김을 받아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는데, 잠시 후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관(同官)의 빚을 탕감해 주지 않고 옥에 가두자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 1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을 다시 잡아 옥에 가두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18:35).

이처럼 자기는 지옥 갈 죄를 아무 대가 없이 사함 받고서도 이웃의 작은 죄를 용서치 못해 앙갚음한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예수 피 공로로 구원받지 못한 자일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매단 무리에게 원수를 갚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중에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아버지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우리가 진정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사함 받았다면, 이웃이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해 줘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 조건 없이 독생자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았으니 이웃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죄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용서하라
주기도문에서는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한 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라고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내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내가 시험에 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이웃을 용서해야 우리 자신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시험에 빠지는 요소 중 하나는 이웃의 잘못을 용서치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다가도 누구 때문에 더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을 용서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자기 의로 충만해서 하나님께서 사하신 죄를 정작 자신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자신이 시험에 빠집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이웃을 미워하고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거짓말 아니냐” 회개는 자신의 죄를 사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지만, 진정 영적 깊이 있는 회개는 하나님이 아들을 죽이기까지 죄 사해 주심을 본받아 이웃을 용서하는 예수 근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죄를 사해 주는 예수 근성이 없다면, 용서는커녕 오히려 이웃과 원수를 맺습니다. 우리는 예수 근성, 예수 특성을 가져 시험에 들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원수는 이웃이 아니라 죄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이웃과 화평하고 거룩함을 좇아야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했으니 우리의 원수는 이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43~44). 진정한 원수는 이웃과 나를 원수로 만드는 ‘죄’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5:10). 그러므로 이웃과 나를 원수로 만드는 죄를 회개해서 씻어 내야 합니다.

만일 이웃을 용서하지 않아 우리 안에 원수인 죄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거룩함과 죄는 구별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원수 된 죄를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셔서 소멸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시고 이웃과는 화평케 하셨습니다(엡2:15~16). 그런데도 우리가 교만하여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마음속에 죄를 간직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우리만 하나님과 원수 될 뿐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하늘나라를 주시고도 모자라 독생자 예수와 예수 이름을 주시고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이웃에게 마음을 넓게 먹어야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만이 예수 마음을 품고 내게 죄지은 이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여 이웃과 열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함께 성령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엡2:18).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9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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