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10)] 죄인임을 인정하고 진실하게 회개하라
‘회개하라’(10)

등록날짜 [ 2016-11-30 13:13:37 ]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 앞에 회개해야


죄인을 회개시키러 오신 예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마태의 신분은 세리(稅吏)였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 정부를 위해 일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고 징수했기에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기와 같은 부류의 죄인이자 매국노로 여겼습니다. 마태 역시 유대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에게 예수께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시자 마태는 그 자리에서 예수를 자기 집에 초대해 함께 식사합니다. 또 당대에 자기처럼 죄인 취급받던 많은 사람도 초청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이 곧 인정과 우정의 표시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세리,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예수를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마태와 같이 자기를 죄인이라 여기는 자를 불러 회개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예수
그 당시 유대인 중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 등은 율법을 공부하고 지키고 가르치면서 율법 지식을 의(義)로 여겼습니다. 지식과 행위가 그들의 의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회개하라” 말씀하실 때도 자신들은 율법을 잘 알고 지키고 있는데 무엇을 회개하라 하느냐며 외면했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은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적 없고,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 사실도 없고, 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다 의를 내세웁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 믿기 힘듭니다. 아무리 죄를 지적하면서 회개하라 해도 자신에게는 회개할 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자기는 술·담배·도박·간음에 빠져서 예수 믿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죄를 사해 주신 예수를 쉽게 만나 구속의 은총을 얻습니다. 예수를 믿을 자격은 바로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는 ‘낮은 자세’입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롬3:23). 예수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1:21). 그런데 자기는 죄짓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인류의 죄를 사해 주시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주신 예수의 피 공로는 그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만이 예수의 피 공로로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얻습니다. 또 예수가 죄인인 내 병을 치료해 주시려고 채찍에 맞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온갖 질병에서 놓임받고, 예수가 내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 저주받으셨다는 사실을 자기 몫으로 가지는 사람만이 저주에서 놓임받아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자신을 죄인이라 여기지 않아서 회개치 않는 사람은 예수께서 생애를 바쳐 주신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은 자신을 의인(義人)이라고 믿었기에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기회를 영원히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세리 마태는 자기가 죄인인 줄 알았기에 예수의 부르심에 응했고 회개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세리를 불러 제자로 삼으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죄인임을 자백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보다 더 처참하게 죽어야 할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의 공로를 100%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예수를 독점합니다.

진실하게 회개하여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라
예수께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사역할 때 마태는 그 도시 세관(稅關)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무리에게 하신 말씀을 들었고, 더러운 귀신을 쫓고 각종 질병을 고쳐 주시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자신에게 오셔서 “나를 좇으라”하실 때 주저하지 않고 좇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집에 초대해 자신과 친분 있는 세리들과 유대인 사회에서 죄인이라 정죄받는 친구들을 불렀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에게 보여 주신 진실함에, 마태 역시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예수께 보여 드리고, 친구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자 했습니다(눅5:29). 마태는 애써 닦은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좇았습니다(눅5:27~28). 예수께서 보여주신 진실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장에 탕자는 아버지와 진실이 통하지 않았기에 자기 몫의 재산을 먼저 받아 아버지 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진실을 모르니 아버지 사랑을 간섭이라 오해해 불평불만이 가득했고, 아버지 사랑을 결박으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것은 탕자처럼 진실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우리 인간에게 진실하셨습니다. 또 그 아들 예수 역시 자기 살을 찢고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기까지 진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진실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당신이 회개한 죄를 사해 주시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회개하라”라는 외침에는 우리를 향한 예수의 진실한 생애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놓으신 진실함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양심 속에서 죄를 고백하는 수준보다 더 깊고 무겁게 자기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놓을 때 진실한 회개가 나옵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0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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