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16)]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심정을 알고 회개하라

등록날짜 [ 2017-01-18 13:24:32 ]

내 죗값을 대신 갚으려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의 심정을 깊이 알고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다시는 그 죄를 범치 않고 주님 닮은 인격적인 성장 이뤄


회개하는 자가 받는 특별한 사랑
목회는 기도나 설교 어느 한 가지를 잘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무엇보다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지도자의 자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자질은 죽을죄를 지은 죄인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 자질을 갖춘 목회자라면 성도들이 주님 닮은 성품에 압도돼 평생 따릅니다. 사랑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최고의 힘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갖춰야 하는 자질은 모든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자기 죄를 회개하는 성도가 특별히 사랑받습니다. 물론 자기 죄를 회개치 않은 사람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받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 믿지 않아 죄인 그대로인 사람이나, 예수 믿어 죄를 사함받은 사람이나 모든 인간은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 만물을 누리는 사랑을 똑같이 받습니다. 악인에게도 비가 내리고 태양빛이 쬐이니까요. 이처럼 만인이 다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반면 예수 믿는 사람은 자연 만물을 풍성히 공급받는 일반은총에 더하여 예수 피 공로로 죄 사함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특별은총’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은 육신이 죽으면 죗값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단절된 장소인 지옥 불 못에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당합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죽으면 죄를 사함받았기에 하늘나라에 들어가 영원토록 행복을 누립니다. 그것은 회개하여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사함받은 사람이 받아 누릴 최고의 사랑입니다.

주님의 심정과 통하는 회개
누군가 제 가족이 몇 명인지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성도 수를 정확히 모르니 얼른 말을 할 수 없지요. 저뿐 아니라 목회자라면 대부분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기를 가족으로 여기는 목사의 심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무심코 한 행동이나 말을 오해해서 삐치고 골내고 시험 들기도 합니다. 성도를 피붙이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목사의 심정을 모른 채 목사의 언어나 행동을 트집 잡아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서 살고 죽으려 작정한 사람입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느 목사든지 그런 주의 심정이 마음 깊이 깔려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목사의 심정을 알아주는 성도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마는, 목사는 성도가 그런 속내를 몰라줘도 으레 그러려니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인류의 죗값을 갚아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셨듯이 말입니다. 주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야 우리가 살 수 있기에, 아무 조건 없이 묵묵히 죽으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자기 몸이 다 닳도록 아무 조건 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사정을 제일 잘 압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왜 회개하라고 외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우리 사정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는 우리 사정을 아시기에 회개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의 심정을 알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과 심정이 통할 때 회개를 깊이 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 사함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잘 압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회개
어떤 사람은 회개할 때 죄에만 자기 생각을 고정합니다. 그런 사람은 울며 자책(自責)할 뿐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습니다. 회개할 때 자기 죄만 바라봐서는 절대 안 됩니다. 내가 지은 죽을죄를 대신 담당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온갖 고초를 당하다 죽으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 죄를 씻겨 주려고 지금도 우리의 회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회개는 자기 혼자 소리치고 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죄 때문에 망하게 된 내 처지때문에 울어야 하겠지만, 그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당하며 맞이한 죽음도 함께 붙들고 울어야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 받아 죽은 주님을 바라볼 때, 회개하는 자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겠습니까? 눈물 없는 회개는 자책일 뿐입니다. 자책한 사람은 돌아서서 그 죄를 다시 범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예수께서 당하신 아픔과 고통, 피를 흘리고 죽으신 그 고통의 현장에 죄를 쏟아 내놓았기에 죄를 범하라고 해도 다시는 범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주님이 피 흘려 죽으셨는데, 다시 죄지을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주님 앞에 회개할 때 나 때문에 당한 고난과 죽음을 생각한다면 다시 죄를 지을 수는 없지요.

부모가 자식 키울 때 얼마나 속 썩는지 그 고통을 자식이 안다면 불효하거나 타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회개할 때마다 그 죄를 용서하려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과 죽음을 기억한다면 다시는 죄짓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습니다. 그 죗값을 치르려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간 고통의 값을 알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 심정을 알 때 비로소 철이 듭니다. 직원도 회사 사정을 알 때 중역이 되고, 교회 사정을 아는 직분자가 중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자책한 사람은 항상 그 죄를 다시 범할 여지가 많고, 영적 성장이 더딥니다. 하지만 십자가에서 고난당하고 죽으신 주님의 심정을 알고 그 피의 공로를 붙잡고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은 다시는 그 죄를 범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인격이 성장해 갑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 십자가 피의 공로, 그 주님의 사정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주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사정을 알며 회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1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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