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17)] 회개로 주신 은혜를 함부로 남용하지 말라

등록날짜 [ 2017-01-23 14:03:24 ]

‘회개하라’ 복음 듣고 구원 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예수께서 흘리신 피의 공로 의지해 회개할 수 있지만
육신의 욕구 채우며 죄짓는 기회로 남용하지는 말아야


회개의 기회를 남용하지 말라
율법 시대 사람들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으려면 반드시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짐승은 흠 없이 온전한 것이어야 했고, 제사 절차는 엄격한 예법에 따라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짐승의 피로 드린 제사로는 죄를 씻어 주되 일순간 사해주는 온전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해마다 늘 제사를 드려 죄를 사함받아야 했습니다(히10:1). 이처럼 율법 시대 사람들은 회개하여 속죄받는 데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런 반면에 복음 시대에는 회개하는 데 어떤 제한도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의 공로에 의지해 죄를 회개하면 그 자리에서 죄를 완전히 사함받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상관없이 주님과 심정이 통하는 회개를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구속의 은총이 허락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 씻은 죄 사함은 영원히 온전합니다(히10:14). 따라서 복음 시대에 태어나서 예수를 믿고 제한 없이 회개해 속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노라 하면서 시공간을 초월해 제한 없이 허락된 이 회개의 기회를 남용하는 사람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해 쉽게 죄를 짓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폭압에 견디다 못한 조선 기독교 교단들이 1930년대 말 무렵에 하나씩 굴복했습니다. 그때 어느 교단에서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총회를 열었습니다. 총회장에는 일본 고등계 형사들과 총칼로 무장한 경찰들이 들어와 살벌하게 총회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목사 대부분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신사참배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난데없이 젊은 목사 한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나는 신사참배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우상숭배에 절대로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 목사는 즉시 체포되어 회의장 밖으로 끌려 나갔고 후에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때 다른 목사들은 ‘우상숭배 해도 나중에 회개하면 될 텐데 무엇하러 잠시 신사에 고개 숙이는 일에 목숨을 걸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 짐짓 목숨이 끊어질까 두렵고 일신상의 고통이 두려워 말씀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니, 죄를 짓더라도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죄는 언제나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대적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사해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회개하여 죄 사함받아 멸망과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받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 아래 이보다 큰 은혜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회개를 육체의 죄를 해결하는 장난거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는 고의로 죄를 짓고 빠져나가는 수단이 아닙니다. 회개는 육체의 정욕을 불사르고 죄를 쏟아놓는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 아들이 자신의 목숨을 주면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바로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받는 회개를 허락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잔인하게 죽임당한 예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는 회개의 기회를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로 얻은 자유는 육체의 방종을 위함이 아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끌려 나와 예수 앞에 섰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이 순리입니다. 율법의 순리에 따르면 간음한 여인은 즉시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예수께 묻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무리가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예수와 그 여인만 남았습니다. 간음한 그 여인은 진리의 복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죄인을 살리는 진리의 복음을 완성하려고 하나님 아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모두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 후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진리의 복음을 우리에게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처절하게 흘리신 피로 완성된 진리의 복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간음죄로 돌에 맞아 죽을 뻔하다 살아난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은 정욕으로 가득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한 없이 회개해 언제든지 예수 피로 죄 사함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회개한 죄를 고의적으로 다시 지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남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죄에서, 저주에서, 지옥의 멸망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예수의 피로 얻은 자유를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기회로 남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갈5:13). 예수께서는 죄의 종으로 살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죄로부터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지 육신이 원하는 죄를 아무렇게나 범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얻은 자유를 육신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살려는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흘린 핏값을 내 목숨보다, 세상의 어떤 재물이나 명예보다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런 각오를 가진 사람에게 예수 생명이 넘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13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