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주제 설교 ‘회개하라’(26)] 회개는 죄로 고장 난 나를 고치려는 사랑의 요구

등록날짜 [ 2017-04-03 20:56:40 ]

죄는 내 영혼을 죽이고 파멸시키는 최고의 원수
“회개하라”는 외침은 윤리나 박애주의로 말하는 것이 아닌
악한 죄에서 벗어나 신령한 본질을 회복하라는 주님 사랑의 목소리임을 알아야


후회를 반복하는 삶
세상 사람들은 돈벌이가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기를 치고, 어떤 이는 권모술수를 부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을 상하면서까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번 돈으로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관리하는 지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정 자기 영혼이 무엇 때문에 불행해지고, 무엇 때문에 행복해지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최고 수준의 지식을 배웠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삶을 잘 사는 참된 지식이 없어서 누구라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후회스러운 순간이 너무나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는데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면서 후회만 쌓는다면, 그 인생이 어찌 되겠습니까? 한 번뿐인 인생을 스스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숨겨 놓은 죄를 모두 꺼내라
우리는 교회 설립 당시부터 예배 실황을 모두 촬영해 두었습니다. 31년이라는 세월이 그대로 영상으로 보관돼 있어 원하는 시기의 예배실황을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이라는 두루마리에 둘둘 말려 하늘나라 창고에 잘 보관돼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최후의 그 날, 자신이 살아온 날들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망각하거나 그냥 지나친 일도 세월이라는 두루마리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다 보관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사람이 한 일을 다 알고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과거의 모든 비밀을 하나님 앞에 모조리 고백할 날이 옵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2)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최후의 날,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스스로 폭로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감춰 놓은 죄악이 드러나서 피할 수 없는 심판을 받는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혼을 죽이고 파멸로 던지는 죄악을 다 끄집어내라’는 호소였습니다. 교회에 와서만 회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죄를 털어놓아서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 자기 속에 쌓여 있던 죄가 자기를 고발하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당신이 먼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회칠한 무덤은 겉은 하얗게 칠해 놓아서 멀끔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송장이 썩어갑니다. 이같이 바리새인도 겉으로는 율법을 지켜 의로워 보이지만, 실제 그 속에는 온갖 더러운 죄악이 가득합니다. 주께서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무섭게 책망하신 이유는 ‘썩은 것을 모두 꺼내서 회개하고 구원받아라’는 의미였습니다. 회칠한 무덤 속에 든 썩은 송장 같은 불의를 내놓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 날에는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도 겉은 회칠한 무덤처럼 거룩한 척, 선한 척, 신령한 척, 사랑하는 척, 의로운 척하나 실상 그 본질은 그렇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썩어 가는 송장이 누워 있는 회칠한 무덤처럼 죄악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잎과 줄기는 싱싱하고 보기 좋은데 열매는 떫고 시어서 짐승 사료로도 못 쓰고 내버려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주께서 저주하고 미워할 열매만 내게 잔뜩 쌓여 있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할까요? 주님 재림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나 성경에 비춰 세상 돌아가는 징조를 보면 그 날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당신 속에 주님이 바라는 열매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회개는 주님의 사랑의 요구다
개구리 한 마리가 차에 치여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장면을 본 사람의 반응은 어떨까요? 징그럽다고 외면하며 가던 길로 종종걸음을 치겠지요. 창조주 하나님의 눈에는 미물인 개구리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나 그저 자신의 피조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로 죽어 가는 인류를 살리시려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죗값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기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는 자를 살리려면 물속에 뛰어들어야 하고, 불에 타는 사람을 살리려면 활활 타는 화염 속에 뛰어들어가야 하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예수만이 나를 살린다는 간절함, 예수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죄를 모조리 찾아 자신이 죄인이라고 자백하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죄를 회개한 사람을 만나 주러 오셨습니다. 나를 도와주시려는 예수를 만날 자격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윤리가나 도덕가 혹은 박애주의자로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주님 없이 살았던 과거를 내놓고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자신의 본질을 회복하라고 호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장 난 부분을 가르쳐 주고 고쳐 줄 테니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 모르지만, 주님은 모두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알아야 할 생명의 지식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시간은 말씀을 듣고 회개할 때입니다. 이런 생명의 지식으로 주님이 주신 최고의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5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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