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믿음의 동반자 되고파

등록날짜 [ 2004-04-27 14:27:21 ]

아내의 제사 거부와 부모님의 전통 고수. 나는 이 둘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 속에 있다가 아내의 애절한 기도로 연세 중앙교회에 등록을 했다. 교회에 등록을 하긴 했지만 예배 중의 내 자리는 항상 강단과 제일 먼 성전 2층 맨 뒷자리였고, 팔짱끼고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를 ‘50점, 60점’하는 식으로 판단하며 점수를 매기며 허송세월을 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말씀을 계속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목사님 말씀에 젖어들게 되었다. 아내가 큰애의 심장병을 기도하여 고쳤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이제는 믿게 되었고, 어머니의 대장암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겼다. 어머니는 대장암에, 아버님은 위암에 걸려 고생하셨지만 부모님 모두 하나님을 알게 되고 제사도 드리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기나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 받았던 대장암이 재발한 어머니를 어떻게든 믿음으로 살리고 싶었다. 병원에서도 이미 포기했고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기에 우리는 하나님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성전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시거나, 우리 집에 계시면서 믿음의 기도를 드려보자는 나와 아내의 간절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을 지경이 되자 아내는 금식기도에 들어갔고, 나도 아내를 따라 생전 처음 릴레이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다. 비록 믿음은 없었지만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면서 주님께 매달리고 싶었다. 금식 마지막 날, 기도의 응답으로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여 집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우리 집에 오시던 나의 어머니의 얼굴은 구안와사로 인해 입은 돌아가서 보기 흉했고, 몸은 부어 있었다. 3일 동안 물 한 모금도 드시지 못하던 어머니를 모시고, 이인호 목사님, 전도사님, 구역장님, 처형 내외(김형우, 조현미집사) 분들이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매달린 끝에 다음날부터 바로 우유를 드실 수 있었다. 아내는 음식을 못 먹게 만드는 것도 귀신역사요, 구안괘사도 귀신역사라고 어머니께 말하더니 매일 손을 얹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아침저녁으로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를 빠짐없이 해드리고 시간만 나면 찬양을 불러 드렸다. 의심이 많던 나, 체험이 없던 나는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또한 이제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며 하나님이 내게도 체험을 주시는구나 생각했다.

퇴원하면 곧바로 돌아가실 거라는 의사의 말은 주님의 능력 앞에서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퇴원하여 지난 11월 소천하시기까지 6개월 남짓을 우리 집에 계시면서 빠짐없이 주일성수하시고, 전도사님 예배 모두 드리시고, 구역장님의 금요 구역예배도 모두 드리시고, 막내 동생의 둘째 손주도 보시고, 아버님이 그렇게 고집하던 산꼭대기 초라한 빌라에서 아파트로 이사하시면서 이사 예배도 드리시고, 소천하시는 날까지 기도하시고 주님을 인정하시며 그렇게 고통 없이 믿음으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관절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부드러웠고, 얼굴도 환하셨다. 집안 장손으로 대소사를 치루면서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보아왔던 나의 아버님도 결국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 천국에 정말 내 아내가 갔노라’고 고백하셨다. 위로차 우리를 찾아 오셨던 담임목사님께 무릎 꿇고 회개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렸다.

마지막 가시는 시간까지 전도사님을 찾으셨던 어머니. 난 그때 직분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제 부족한 나에게도 서리집사의 직분을 주신 하나님! 나도 전도사님이나 구역장님처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믿음의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하고 직분 감당에서 반드시 승리하여 영혼의 때를 아름답게 준비하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위 글은 교회신문 <5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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