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ㆍ이복희 집사 가정
하나님 모시는 싱그러운 가족

등록날짜 [ 2006-06-13 11:14:30 ]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참으로 아름답다.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의를 먼저 생각하며, 그의 일을 위해 순종하는 삶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세상의 꿈은 변하고 없어지지만 영원한 꿈을 향해 변함없이 질주하는 부부,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김종철, 이복희 집사 부부가 사는 모습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행복의 비법
언제나 소년소녀 같은 풋풋함과 해 맑은 미소를 지닌 김종철 이복희 집사 부부 행복의 비결은 무엇일까? 35년을 함께 한 삶만큼이나 닮은 두 부부에겐 싱그러운 청포도 향기가 물씬 풍긴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거예요.” 김 집사는 이 비법을 터득하고 일상 속에서 늘 가족의 행복을 만드는 자상한 남편이요, 아버지였다.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노력하고, 먼저 배려하는 남편 모습에 기나긴 세월을 살면서 불평불만을 가져 볼 수가 없었다고 아내가 살짝 고백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 집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순종한 결과 늘 채우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며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풍족하면 풍족한 대로, 때로는 한 사람의 신앙이 나약해질 때 다른 한 사람이 더욱 인내와 눈물의 기도로 묵묵히 감사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다.

결혼 후 믿음생활 깊어져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교회에 다니며 믿음을 차곡차곡 키워갔지만 결혼 후 전격적인 신앙생활로 직분도 감당하면서 믿음은 더 깊어지고 높아졌다.
“남편이 제 의견을 존중하며 신앙생활도 함께 동참해 주었어요.” 이 집사는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이 고맙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가장 힘든 고비는 지방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긴 1980년, 시동생 두 명과 자녀 셋이 함께 대식구가 생활한 시간이었다. 생활도 신앙도 모두 힘든 시기였다.
“아내는 아무리 힘들어도 바가지 한번 긁지 않았어요.” 김 집사는 그런 아내가 더욱 고마웠고 함께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도와주는 아내 덕으로 역경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가족구원
김 집사는 철저하게 제사를 지내는 집안의 장손으로, 신앙생활은 했지만 부모의 뜻을 거역 못하고 제사의 자리를 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1992년부터 연세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신앙관이 정립되었고 제사가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우상숭배임을 알게 된 부부는 기도로 이길 힘과 지혜를 구한 결과 담대함이 생겼고 제사 때마다 지혜롭게 그 자리를 피할 수가 있었다.
이 집사는 어느 날 기도 중에 여전히 제사를 지내며 구원받지 못한 부모의 영혼이 얼마나 불쌍한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구원받기를 간절히 간구하게 되었다. “간절한 기도가 어떤 것인지 알았어요.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주님이 그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시고 구원의 기쁨도 주셨어요.”
그렇게 간절함으로 기도한지 3년이 지날 즈음, 교회에서 ‘어버이초청 주일’이 있었다. 그 주일에 참석한 시댁 부모는 그날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깊게 뿌리 내렸던 우상숭배도 모두 버리게 되었다. 주님이 일하신 순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시댁부모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이 집사는 자녀들이 부모를 속이려고 할 때마다 주님이 막아 주셨고, 자녀들이 정직하고 순종하며 예쁘게 잘 성장해 주어서 늘 주님께 감사하다고 했다.
김 집사는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윤석전 목사님처럼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두 부부는 말한다.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모두 순종으로 받은 보답이라고....

위 글은 교회신문 <8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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