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기독교선교교회연합회 취약계층에 쌀 700포대 전달
“이웃 영혼 주님처럼 섬기겠습니다”
등록날짜 [ 2011-01-05 13:52:59 ]
마을 주민 300여 명, 죄를 회개하며 주께로
더 큰 역사 이룰 기회 놓친 것 후회스러워
지난날, 귀신 숭배가 그치고 주님을 예배할 장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작은 숲이 눈에 들어왔다. 의젓하게 서 있는 나무들 앞에는 아름다운 기와지붕을 얹은 예배당이 서 있었다. 구속받은 마을 사람들이 세운 예배당이었다. 그날 밤 기도회 때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교인 300여 명 앞에서 기도와 찬송을 인도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다. 그 뒤로 두 주일 동안 성경공부를 했는데, 아침과 낮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저녁 시간은 안 선생 집에서 여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안 선생 부인이 이 여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 크나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서로의 죄를 자백하다
열 이틀째 되던 날, 나는 오랜 친구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 집회에 역사하고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내 눈에는 조금이라도 감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죄인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아무리 악해도 성령의 역사는 막을 수 없습니다. 이곳 신자 중에서 누가 서로 미워하는지 제게 말해 주십시오.”
그 사람은 엎드려 울면서 자기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게 된 가엾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고 그들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는 하나님과 화목하고서 형제들과도 화목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형제 중 한 사람은 마침 내 말(馬)에 편자를 달고 있었다. 내 친구가 그 사람에게 가서 연장을 집어주고 말의 발을 들어주는 등 도와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뻤다. 기회가 생기자 그는 두 사람을 각각 찾아가서 지금까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노라고 고백했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다. 제자 300여 명이 모였을 때 죄 씻음을 받은 교인이 그들 앞에서 간증하자 그들은 모두 자기 죄를 자백하면서 울었다.
며칠 뒤 동료 선교사인 아펜젤러 목사에게 그때의 정경을 말해 주니까, 그는 매우 가슴 아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 수천 리를 걷더라도 죄 때문에 그렇게 운 한국인을 만나 보고 싶군요. 난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소래 사람들은 내게 남아서 자기들의 목사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급료를 지불하고, 더 큰 집을 지어 주고, 하인들을 붙여 주고, 길 잃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돕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이미 내가 없는 동안 다른 선교부가 소래 지역에서 이미 사역을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당당하게 들어가지 못하고 문제가 복잡해지는 걸 더 두려워했던 것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한다.
만약 그때 이런저런 관습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더라면 주께서 예비하신 이 사람들에 의해 이 나라에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때로는 평화를 사는 데 지나치게 비싼 값이 들 때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작별할 시간이 오자 사람들은 혼자 가겠다는 나를 만류하고서 가장 유망한 청년을 나와 함께 가게 했다. 그 청년에게 목회 훈련을 받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 밖에도 소책자들을 발행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돈을 내게 주었고, 40리 밖까지 배웅했다. 나는 다음 두 주일을 서울에서 그들의 사랑을 전하면서 보냈다. 그 소식은 동료 선교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었고, 오랜 친구들에게 새로운 힘을 북돋워 주었다.
근면하며 지적 능력이 뛰어난 한국 사람들
서양에서 한국에 운명을 걸고 온 학생들은 한국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몽골족에서 유래했고 아랍인의 피가 약간 섞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으나, 확신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아랍인들은 7~9세기에 한국에서 무역했는데, 아마 이때 그들의 몇 가지 관습을 이곳에 남긴 듯하다. 아랍인들의 매사냥은 심지어 매를 훈련하고 선별하는 것까지도 한국에서 똑같이 시행한다. 한국인들이 손님을 극진하게 환대하는 것도 이스마엘 자손들의 관습과 비슷하다.
생김새는 중국 사람들과 다르고, 일본 사람들과도 딴판이다. 일본 사람들보다 키가 훤칠하고 몸집도 크고, 지적으로도 더 우수하며, 일본 사람들에게 가득한 잔인한 말레이 족의 피가 조금도 흐르지 않는다. 한국 사람들은 명민(明敏)하여 어떤 가르침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창의력이 있고, 근면하고, 고생과 시련을 거의 초인적으로 잘 참아 내며, 적자가 생존하는 야생 동물들과 비슷한 활력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아기를 낳아도 천연두에 면역되기 전까지는 자녀의 수에 넣지 않는다.
그들의 윤리는 주로 유교 윤리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아주 냉정하게 말해서 그리스도를 빼놓고 생각하면 중국과 한국 문화는 서양 문화보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훨씬 더 많이 이바지해 온 게 사실이다. <계속>
『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