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한국 교회 전도기 <17>] 두만강 접경 지역으로 전도에 나서다

등록날짜 [ 2011-03-09 16:27:26 ]

매서운 눈보라를 뚫으며 국경 지역에 복음 전해
위험요소 곳곳에 산재하지만 기쁨도 그만큼 커

어느 해 4월, 배를 타고 원산을 떠난 나는 한국 북단에 있는 항구에 닿았다. 우리 교회 초대 집사가 가게 문을 닫고 나를 따라왔으므로, 나는 그와 함께 인력거에 성경 상자들을 싣고 두만강 접경 지역으로 떠났다.

사흘째 되던 날, 우리는 한반도 동북단에서 한국과 중국을 가르며 흐르는 두만강 연안에 있는 가장 큰 도시에 들어가 거리를 누비며 전도했다. 가는 곳마다 운집한 온순하고 조용한 청중 앞에서, 나는 불과 800km 떨어져 있는 한국에서 25년이나 살면서도, 세상에 오사 그들을 구원하려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전하러 찾아오지 않은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노점을 2달러에 빌려 이 국경 도시에 서점을 내고 미국 성서 공회가 찍은 성경책을 팔았다. 우리 숙소는 노년기에 접어든 중국 산에 있었는데, 아침에 잠을 깨어 강 저편을 바라보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길을 계속 가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었다. 조그맣고 약한 조랑말을 타거나, 크고 강한 황소 달구지를 타거나, 아니면 걷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째 방법을 택해 길을 나섰다가 결국 마지막 방법을 의지했다. 만주 비옥한 땅에 서리가 내렸다. 이곳은 부식토가 많이 퇴적한 곳이어서 내 모자 빛깔만큼 검었다. 길은 빵 반죽처럼 질었다. 조랑말은 나를 태우지도 않았는데 거의 주저앉다시피 했고, 따라서 나는 양쪽에 너덧 근이나 되는 진흙이 달라붙은 가죽 장화를 신은 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눈이 녹아 실개천들을 이루고, 실개천들이 다시 모여 이룬 너비 180~240cm에 깊이 180cm나 되는 깊은 개울들이 광활한 충적토 지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땅이 너무 비옥해서 퇴비들이 오물처럼 버려졌다. 훗날 이 지역에서 자란 수수를 고향으로 가져갔는데, 비료 한 번 주지 않고 자란 이 수수는 수염뿌리가 50cm나 되었다. 그곳에서 감자도 먹었는데, 얼마나 푸짐하고 알이 많이 들어찼는지 눈을 감고 먹으면 속에 크림을 넣은, 으깬 감자 같았다. 비료 한 번 주지 않고 이렇게 풍성한 농작물을 거두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만주 지방에는 한국인 10~20만 명이 들어와 살고, 러시아 국경 저편에도 비슷한 숫자가 살았다. 우리는 한국에서 정북 방향으로 이 지방 한복판을 가로질러 올라간 뒤, 발길을 남으로 돌려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남으로 48km만 더 내려가면 서점이 있고, 강어귀는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눈보라가 매우 심해 국경 지방에서 이틀 동안 발이 묶였다가, 한국 쪽 산맥을 탔다. 이곳은 호랑이들이 출몰하여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곳이었다. 일행은 산맥을 넘기 전에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마부를 구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두만강 지류를 건너 산자락에 접어든 뒤 스물두 번이나 꼬불꼬불 산허리를 돌아 올라갔다.

정오가 되니 눈 녹은 물이 합류하여 큰 내를 이루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그때 육 척 장신에 풍채 당당한 산 사람을 만났다. 너무 닳아 빤질빤질해진 곤봉을 든 그는 우리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국경 마을의 훌륭한 예의를 갖춰 우리를 대접했다. 나는 솔직히 그가 든 곤봉이 무서워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아침이 되자 개울물이 줄어든 덕분에 무사히 건넜다. 숙식비를 내려고 하자, 집주인은 변경 마을 방식대로 돈 받기를 한사코 거절했다. 아주 정중하게 얼마라도 주려고 했더니, 그 사람은 육 척이나 되는 몸을 일으키고는, “서양 양반, 우리 북쪽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소. 우리는 양반들이오” 하고 말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전에 백인을 본 적이 없었으나, 열려 있는 그들의 마음은 따뜻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언제나 변경에 사는 개척민들을 좋아했고 꾸밈없이 선의를 베푸는 이 훌륭한 한국인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깊은 눈 속을 헤치고 북쪽 기슭을 기어올라 국경선을 이루는 산맥 정상에 올라갔을 때 생소하고 경이로운 대자연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길가에 움푹 들어간 작은 못에 식용 개구리 떼가 마치 남쪽 지방 늪지에서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랑이가 있는지 둘러보았다.

한국에는 “육 개월 동안에는 사람이 호랑이를 사냥하고, 다른 육 개월 동안에는 호랑이가 사람을 사냥한다”라는 말이 있다. 내 친구는 숲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호랑이 꼬리임이 분명했다. 호랑이는 마치 고양이가 새를 발견했을 때 그렇듯이, 꼬리를 앞뒤로 꼬고 있었다. 낙엽에 나타난 발자국을 따라간 친구는 그 거대한 짐승이 산마루에 있는 어떤 물체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묵직한 사냥총을 꺼내 그 짐승의 귀 뒤를 조준하여 쏘아 쓰러뜨린 뒤, 호랑이가 과연 무엇을 응시하고 있었는지 보려고 서둘러 뛰어갔더니,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언덕 경사면에서 한국인이 땔감으로 쓸 나뭇잎을 모으고 있었다. 호랑이는 가죽도 엄청나게 커서,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무려 4m나 되었다. <계속>『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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