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마틴 루터(Martin Luther)
개신교 개혁의 선두주자

등록날짜 [ 2011-03-30 17:42:58 ]

 많은 사람이 10월 31일을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로 기억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날을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독일 비텐베르크 사원 정문에 선언문을 붙인 독일 사제 한 명을 기념하는 날로 기억한다. 95조항(Nineth five Theses)으로 된 마틴 루터의 선언문은 수세기 동안 교회가 부딪혔던 문제들과는 전혀 다른 대소동을 불러일으켰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무덤덤하게 살 수 없었던 확실한 문제아인 그 말단 사제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아이슬레벤에서 영국인 광부 아들로 태어났다. 18세에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했다. 그 후 1505년 여름, 루터는 천둥 치는 폭풍우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며 사제가 되기로 맹세했다. 그는 그 맹세를 지키려고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 1507년 사제로 임명받았다. 나중에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1510년 수도회 일로 로마를 방문했을 때 면죄부를 사고파는 것을 본 루터는 무척 놀랐다. 지금 우리는 면죄부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 비용을 내려고 아직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선불 명목으로 길에서 면죄부(하나님의 용서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여겨짐)를 팔았다.
그 일은 루터를 화나게 했고, 루터는 성경을 왜곡한 중세 교회의 양심을 흔들었다. 교회를 분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만 초대교회 교부들과 사도들이 지켰던 교회를 그 본래 역사의 위치로 되돌리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로마를 방문하면 아직도 예수께서 빌라도 법정에 다가가시며 올라가셨던 것으로 추측하는, 나중에 로마로 옮겨놓은 거룩한 계단을 기념하는 교회(Church of the Sacred Steps) 혹은 스칼라 성스러운 교회(Church of the Scala sancta)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계단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며 기어오르던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라는 말씀에 사로잡힌다. 예리한 통찰력을 소유한 루터는 죄인이 어떻게 용서를 받을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했다. 선행으로, 혹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어떻게 죄인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쓴 바울의 글이 마침내 루터에게 “오직 믿음으로!”라고 외치게 해주었다. 그리고 개혁을 시작했다.

성경 말씀은 루터가 그 당시에 행하는 일들을 보게 해주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루터의 가르침과 설교의 기초가 되었다. 바울 서신서들은 루터 신학에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 하나님 말씀을 위배한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거기에 대항했다.

역사가 한 명은 “루터의 연구는 그에게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며,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으며, 믿음으로만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해주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루터 자신은 “강한 성이 되시는 우리 하나님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 요새이시다”라고 말했다.
마틴 루터는 세상을 변하게 하는 교회를 변하게 한 사람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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