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말콤 머거리지(Malcolm Muggeridge)
어느 진보 기자의 회심과 참회

등록날짜 [ 2011-03-23 17:22:18 ]

젊은 시절 말콤 머거리지는 칼 같은 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칼을 사용할 때는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지위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베푸는 일이 없었다. 그는 영국 군주제는 ‘특별 연속 드라마’와 같다고 비평했다. 또 미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두서가 없는 늙은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펀치(Punch)라는 잡지를 편집하면서 그는 사람들이 읽으며 흥분할 문제들을 글로 썼다.

젊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2년 동안 러시아에 다녀온 후 그는 이런 체제를 통렬히 비난하는 글을 썼는데,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머거리지는 외식과 가면의 포장을 벗겨 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사회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비평가며 회의론자며 진보주의자며 재기 넘치는 작가였다. 그가 아주 회의적이던 시절에는 서구 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과학과 권력을 중시하며, 하나님을 부인했다.

그는 혼자 성경을 읽다가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고 나중에 이야기했다. 그는 영국 고향 집에서뿐 아니라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인도와 러시아에서도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성경을 읽었다고 말했다. 복음서에서 그는 19세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그가 84세 때 쓴 참회록에서 자신의 성경에 가장 많은 표시가 되어 있고 눈물로 얼룩진 부분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기록한 부분이라고 고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모잠비크에 주둔한 영국 정보국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의 의심과 회의는 서서히 녹아들어 갔다. 절망감을 느낀 그는 물에 빠져 죽으려고 뛰어들었다. 그의 몸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그는 커다란 불빛을 보고 다시 해안가로 돌아왔다. 그는 익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때 기독교로 회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본 마더 테레사 역시 그리스도와 같은 희생적인 마음으로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함께 예배를 드린 러시아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랬다. 그들과 나눈 경험을 쓴 글에서 머거리지는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무자비하게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 온 이 땅에서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고 썼다.

1982년 11월 27일, 머거리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지만 실제로 그때 회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타락과 세속에 물든 삶을 저주하고, 낙태를 반대하면서 생명에 대한 헌신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자신의 선언 방식이었다.

그의 기사를 보도한 잡지는 그가 ‘87세로 지난주에 생을 마쳤다’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머거리지에게 삶은 바로 그때 다시 시작되었다.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대중매체』에서 그는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처럼 나는 종종 한밤중에 반쯤 잠에서 깨어나 곧 영원히 떠나게 될 이불 속에 누워있는 나이 들어 지친 육신과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어거스틴이 말한 하나님의 도성의 불빛을 본다”라고 썼다.

그렇게 영국의 노(老) 기자에게 하늘에서 빛나는 불빛은 분명한 실체가 되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고 썼다. 말콤 머거리지는 87세에 하늘나라에 입성했고, 거기서 그의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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