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사람들] 아도니람 저드슨
미얀마 어로 된 성경 번역 이뤄

등록날짜 [ 2011-09-07 11:04:16 ]

사람들은 그를 ‘미얀마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불렀다. 그 타이틀은 칭찬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마을에서 불상(佛像)에 절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미얀마로 간 아도니람 저드슨이라는 젊은 선교사에게 조롱하는 뜻으로 붙여준 별명이다.

1813년 조지안 호(號)가 양곤(2006년까지 미얀마 수도)이라는 항구에 닻을 내렸을 때, 그는 겨우 25세였으며 그의 아내는 21세였다. 그가 환영을 받으며 그곳에 도착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정부 관리가 그의 입국을 거절하자 친절한 세관원이 그에게 다가가 가장 좋은 방법은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 세관원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어요? 당신은 여기서 골머리 썩는 일만 겪을 거예요” 하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자 그 세관의 말이 옳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 나라 군대 총지휘대장뿐 아니라 왕까지도 미얀마 땅에 십자가를 꽂으려는 이 의지가 굳은 청년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저드슨은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급해야 했다. 죽음이 자녀 둘뿐 아니라 그가 깊이 사랑한 아내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그러나 저드슨은 포기하지 않았다.

영국이 미얀마를 침략할 때, 저드슨은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저드슨은 미국인이었지만, 미얀마 왕의 눈에는 그가 외국인이고 따라서 의심의 대상이었다. 저드슨이 2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고문과 병마에 시달릴 동안, 성경을 미얀마 어로 번역하는 일이 중단됐다.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미얀마 어로 번역한 그의 소중한 원고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한 그의 아내는 원고를 베개 속에 넣어 꿰맨 다음 저드슨이 갇힌 지저분한 감옥에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것을 베고 잤고, 각 장을 위해 기도했고, 그 앞에 놓인 과업을 마칠 때까지 과연 자신이 살아남을 것인지를 걱정했다.

영국 군대가 수도(당시 양곤, 현재는 네피도)까지 밀고 들어오자 미얀마 정부는 빈혈과 설사로 허약해진 저드슨에게 영국군과 벌이는 협상에 통역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저드슨은 풀려났지만 그의 번역 원고는 사라졌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운명을 저주하는 대신 저드슨은 다시 사역을 시작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감옥에서 자신을 섬기던 신실한 하인이 어느 날 아침 먼지가 쌓인 채 헐렁하게 묶인 가방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 저드슨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방을 들여다본 저드슨은 기뻐서 펄쩍 뛰었다. 바로 그가 베개로 사용하던 그 소중한 원고를 충실한 친구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베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딱딱하다고 생각한 사형 집행인이 그것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저드슨은 비로서 미얀마 어로 된 성경을 최초로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미얀마에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조롱조로 불리던 그는 실상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가! 당신이 사업을 하건, 아이들을 가르치건, 농사를 짓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롱에서 나온 말이건 아니면 존경을 나타내는 말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는 목표와 성품, 충성과 굳은 의지에 대한 안목을 잃었다. 우리는 위험이 가장 적은 길을 골라서 걷고, 평범한 보통 수준에 머물며, 아무런 업적도 이루지 않고 있다. 연금을 받으면서 편안하게 정착해 살아가려고 하는 오늘날 많은 사람과는 달리 저드슨은 십자가와 면류관, 이 둘만을 원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