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세상 풍속을 좇는 이유, 정체성의 위기

등록날짜 [ 2012-02-15 23:28:02 ]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는 풍토 갈수록 심화
외형보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부심 지녀야

미국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 정체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자아 심리학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에릭슨이 말한 바로는 정체성은 나의 나 됨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신념일 뿐 아니라 타인이 관찰할 수 있는 구별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에릭슨은 정체성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말하면서 정체성 위기의 해결방식이 문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정체성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존심뿐 아니라 타인과 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원래 정체성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가꾸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소비사회는 모든 것을 시장에서 유통하는 상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는 소비 양상이 정체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고급 브랜드와 명품에 집착하며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 실용성보다 과시적 소비로 자신을 뽐내는 행동이 그런 예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존재를 나만의 특이성이나 능력이 아니라 남과 비교하여 외양을 통해 과시하려는 경향으로 실은 정체성의 위기를 보여준다.

일찍이 실존주의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소비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시장적 정체성’이자 인간 소외의 전형적 현상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시장 정체성의 일반화는 소비사회의 특징이지만 유독 한국이 심한데, 바꿔 말하면 한국인의 정체성 위기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이다.

한번 주변을 돌아보라.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통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남의 시선을 끌고자 전전긍긍한다. 초등학생이 굳이 스마트 폰을 사용해 채팅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 중고생이 노스페이스 같은 비싼 의류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며 끼리끼리만의 동질감을 찾는 것, 직업도 없는 대학생이 스타벅스 같은 값비싼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어른이 골프를 치고 비싼 차를 경쟁적으로 사려는 것이 일반화된 현실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정체성의 토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인정이나 소속감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과시하는 것은 소외와 불안을 더 가속할 뿐인데 한국의 집단문화는 그런 경향을 조장한다. 집단 정체성에 대한 이런 의존은 왜곡된 자아상을 심어줄 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소통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건강한 정서를 갖고 타인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유행을 좇고, 집단의 행동양식을 따라하면서 어딘가에 소속하려고 할수록 개성은 점점 더 실종될 뿐 아니라 모방이 모방을 낳으며 점점 더 맹목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도한 집단적 정체성의 추구는 불가피하게 그 집단에 끼지 못하는 개인이나 또 다른 집단에 대한 폭력을 부른다. 집단적 정체성이 강고해지려면 차별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가 심한 나라에서 신(新)나치 같은 집단주의 문화와 테러가 판을 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증가하고 왕따와 집단 폭력현상이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기는 언제나 그들이 이방 나라 풍속을 좇고 세상 쾌락을 추구할 때 찾아왔다. 이러한 모방 태도가 결국은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 풍속과 소비문화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지 못했다는 증거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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