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나의 친구 되신 예수님

등록날짜 [ 2010-02-16 10:53:46 ]

친구는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변해도 그리운 존재
예수와 함께 감사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살아야

한번은 영국에서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내용으로 현상 공모를 한 적이 있다. 상금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 공모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수학자와 교통 종사자들도 응모를 했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방법, 지도상에 지름길을 측정해서 이들 교통수단들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방법 등 다양했다. 그러나 일등을 한 사람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고, 답 또한 뜻밖이었다.

정답은 이랬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 어디든 친구와 같이 가면 편안하고 즐겁지 않겠는가? 아직도 멀리 남은 나그네 인생길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우리는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려주셨다. 그 사실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롬10:13).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된다(요1:12).

구약성경 잠언서는 친구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
대장장이가 농기구를 만들 때에 쇠붙이를 불에 넣어 벌겋게 달군 후에 꺼내어 망치로 두드리고, 다시 물에 넣어 담금질을 하고, 다시 불에 넣어 달군 다음에 또다시 망치로 두드리어 철을 농기구가 되게 반복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여 농기구가 되어 유익한 도구가 된다. 친구는 세월이 지나고 환경이 변해도 정답고 그리운 존재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신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15:13~15).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하셨는데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다. 흠이 많은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을 친구처럼 따랐고 인격적으로 순종했고,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는 중에도 소망을 가졌고, 모세는 인간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광채가 났고, 야곱은 하나님의 친구라는 이스라엘의 이름을 얻고 나머지 인생을 진실하게 산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면서 예수님과 친구처럼 동행한 인물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으면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신다. 2010년도에는 예수님이 “너는 내 친구”라고 하신 말씀에 감격하여 울고 감사하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렇게 살지 않겠는가?

위 글은 교회신문 <1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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