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고행인가, 은혜인가

등록날짜 [ 2010-05-10 13:54:45 ]

저는 이번 학기에 침례신학대학교로부터 한 학기 동안 안식하며 연구할 기회를 얻어 중국의 여러 지역 교회들을 둘러보고 있습니다.

저를 안내해주시는 목사님과 함께 장족 마을들과 고아원을 돌아보는 중에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한 배 반 정도 큰 청해호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에 연푸른 소금물 호수가 가로로 100킬로미터, 세로로 60킬로미터 정도 펼쳐져 있어서 신비로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아울러 그 큰 호수 옆으로는 황량한 사막과 모래 언덕들이 대조적으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차로 그 지역을 지나가는 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는 가운데도 사막 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얼굴은 며칠 동안 햇볕에 그을린 것처럼 새까맣고 차림새도 아주 남루하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를 안내해주신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라마 불교 신도들로서 적어도 2000킬로미터를 저렇게 걸어서 라마 불교의 성지인 티베트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몇 걸음을 걷고 난 다음에 양 무릎과 양 팔꿈치, 그리고 이마를 땅에 대며 절하고 다시 몇 걸음을 걷는 식으로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간다니, 그렇게 걸어서 티베트의 성지까지 가는 데는 약 이삼 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러한 순례 행위를 온 가족이 함께한다고 합니다.

라마 불교도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죄악을 물리치고, 스스로 고난을 통해 보다 선한 사람이 되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자신의 삶의 문제들에 대해 신적인 존재의 도움을 간구하기 위해서요, 또 자신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여 서원 기도를 하며 신의 도움을 간구했을 때 응답해준 것에 대해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벌어둔 모든 것들을 팔아서 온 가족이 성지로 고난의 순례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에서도 더욱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을 보장받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는 라마 불교도들이 수천 킬로미터가 넘는 순례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들이 만든 헛된 종교가 그들의 풍성한 삶을 빼앗는 모순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극한 고난을 포함한 자신의 종교적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려는 노력의 헛됨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저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매일 값없이 누릴 수 있는 죄 용서함의 기쁨,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감격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언젠가 부활과 영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복음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선행이나 고행을 내세워서 보다 선한 사람이 되거나 신적인 존재의 도움을 얻으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간주하시고 참소망을 주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매일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며 풍성한 삶을 누리는 행복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2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