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월드컵 응원장에서 만난 ‘자긍심’

등록날짜 [ 2010-06-28 23:33:30 ]

하나님 자녀로서의 진정한 자긍심 위해
기도로 지속적이며 강인한 힘을 기르자

나이지리아와 한국의 월드컵 경기가 열린 지난 6월 23일 새벽, 저는 아들과 함께 부천 종합운동장 대형 스크린 앞 열기에 동참했습니다. 득점 순간마다 주민의 환희에 찬 함성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운동장 가득히 차올랐고, 이어서 ‘대∼한민국!’을 합창했지요. 그런데 그 열기의 현장 속에서 문득 ‘이 많은 사람을 기쁨으로 묶어주는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떠오른 답변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었습니다. 타국에서 선전하는 국가 대표선수들을 통해 국민은 국가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그의 최근 명작 ‘살아남기 위해서’에서 개인과 국가가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 지녀야 할 7대 전략을 제시했는데, 그 중 첫째가 ‘자긍심의 원칙’입니다. 개인에게 있어 그것은 ‘스스로 소중한 존재가 되기’입니다. 만일 이러한 자긍심이 없다면 개인은 삶 속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으며, 그 결과 더 이상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대책은 “자신의 최고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기, 자신만을 철저히 믿기” 등입니다. 스스로 소중한 존재가 되기는 성경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즉, 인간의 자긍심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면에 존재하느냐’에 의해 생성되고 그 생명을 갖기 위한 대책은 단 한 가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기’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 바로 진정한 ‘자긍심’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긍심’을 중시하는 것은 세상과 성경 모두 동일하나 그것을 얻는 방법은 다릅니다. 전자는 자긍심의 원천을 ‘개인의 의지’에 두는 반면, 후자가 제시한 그것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2000년 전 갈릴리 바다의 고기잡이 베드로는 자긍심이 바닥난 처지에 놓였지요. 메시아의 나라에서 감투 한 번 써보려고 그가 따라다녔던 예수는 제사장들이 보낸 하인들에게 체포되어 문초를 당했고 그 현장에서, 베드로는 살아남기 위해 예수를 저주하며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낙향하여 다시 어부가 된 베드로에게는 스스로를 존중할 그 무엇도 없었습니다. 그 절망의 시간 속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내 양을 치라”는 소명을 주셨고 그 순간 그의 자긍심은 살아났습니다. 그것은 그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세상은 자긍심을 지니기 위해 자신을 믿고 나가라고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다르게,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것보다 우선순위에 기도를 앞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월드컵 광장의 함성과 같은 순간의 화려함과 영광은 없지만, 그들에겐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자긍심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기쁨으로 채우는, 지속적이며 강인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며 믿는 자들의 능력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8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