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부활까지 나아갑시다

등록날짜 [ 2010-09-01 07:30:05 ]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에게 죄 사함의 놀라운 길을 열어주셨기에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 저 천국에 가서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그 은혜를 영원토록 감사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은혜를 희석시키거나 약화시키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 어린 양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써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표적을 보여 달라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 물 위로 걸으신 표적,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표적, 오병이어의 표적,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말씀 한 마디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신 표적,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리신 표적 등 수 많은 표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왜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까? 고기 배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나온 요나의 경우를 예로 들면서 주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과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사실을 증명하는 분명한 표적으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표적 때문에 예수님과 나사로를 함께 죽이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표적들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표적들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일은 별로 발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표적인 부활은 전혀 다른 성질의 표적입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그분 앞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모습은 부활이 얼마나 우리들의 신앙의 결정적 요소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부활로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증거가 되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유일한 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머무르지 않고 부활까지 나아갈 때 우리의 신앙은 생명력을 발휘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나타낼 수 있게 해줍니다. 부활은 일년에 한 번 부활절 때만 이야기하는 사건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매일 매시간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바로 그 동일한 능력이 오늘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엡1:19~20) 우리는 당당히 부활하신 그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고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그치지 말고 부활까지 나아갑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0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

    소셜 로그인

    연세광장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