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3.1운동을 기억합시다

등록날짜 [ 2012-03-06 18:16:12 ]

지금의 자유와 행복은 그저 얻어지는 게 아냐
선조의 아픔과 고통 생각하며 신앙 돈독해지길

호주는 참 아름답고 풍요로운 나라입니다. 자연 환경이 아름답고 자원이 풍부하며, 인구는 적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호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있었던 영국인의 원주민 학살 문제입니다.

미국에서 유럽인이 그 땅을 정복할 때 인디언을 무참하게 죽인 것처럼, 호주도 영국인이 들어올 때 수많은 원주민을 몰살했습니다. 영국인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좋아했지만, 반대로 원주민은 침략을 당하고 정복을 당했던 것입니다. 영국인은 신대륙 원주민을 ‘발전하지 않은 인간’이라고 칭하며 마치 동물을 죽이듯이 사냥했으며 당시 교회도 이런 생각에 동조했습니다.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평등하게 창조했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이지만, 당시 영국인은 이러한 가르침을 원주민에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주일 오전에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목사와 교인이 총을 들고 원주민을 사냥하기도 했습니다. 원주민에게 교회는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역사를 기억하는 호주 원주민에게 기독교회를 선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호주 교회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회개하지만, 그 쓰라림과 상처를 치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올바르지 못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가려지는지 그리고 선교의 길이 어떻게 막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호주의 역사를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던 3.1운동을 기억합니다. 3.1운동 당시 교회는 종교를 초월하여 불교, 천도교 등과 연합했고, 민족의 독립이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는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애쓰다가 투옥하거나 고초를 당했으며,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민족 계몽에 앞장섰습니다.

또 교회는 출애굽기를 가르치고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기에 젊은이는 교회에서 희망을 보았고, 기독교를 신뢰했습니다. 이런 한국교회의 위대한 역사가 있기에 우리나라가 존재하고, 교회가 굳건히 서 있으며, 자유롭게 선교할 수 있습니다. 침략자에 맞선 저항과 투쟁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민족과 교회가 바로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유와 행복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선조의 죽음과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얻은 것입니다. 교회의 선교도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행동과 믿음 위에서만 지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릇된 믿음과 신앙 그리고 부끄러운 행동은 선교의 길을 막고 성령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안에 있는 아픔과 고통을 보면서 우리의 교회와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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