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동성애는 우상숭배의 결과다

등록날짜 [ 2014-07-28 16:25:33 ]

저급한 욕심에 빠진 인간의 탐욕이 원색적으로 드러난 것

참으로 질기고 독한 역사의 흔적, 절대 용납해서는 안 돼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침례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일꾼을 양성하고자 미국 남침례교단이 운영하는 신학교입니다. 골든게이트 침례신학교는 태평양이 한눈에 펼쳐지는 절경 속에 있는 캠퍼스입니다.
 

아름다움에 취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에, 숲 속에서 그림처럼 펼쳐진 주택들을 보았습니다. 순간 내 마음속에는 ‘음, 천국 같은 모습이군. 평화롭구나. 여기 사는 사람들은 정말로 복 받았군’ 하는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때 내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안내하던 분이 내게 정신이 번쩍 드는 설명을 했습니다. 바로 그 아름다운 주택들이 동성애와 마약을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며 아름다움 너머에 감추어진 추악한 본질을 일깨워 줬습니다. 실제로 동성애 합법화 이야기가 나오면 샌프란시스코가 종종 등장합니다. 이제는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동성애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동성애는 참으로 질기고 독한 역사를 가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이야기뿐 아니라 헬라-로마 시대에도, 우리나라 역사에도 동성애의 흔적이 있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동성애는 이제 ‘차별금지’라는 가면을 쓰고 정당성의 구실을 찾습니다. 동성애를 ‘성적 취향이 다르다, 질병으로 보고 치유해야 한다, 인권 문제다’라고 주장하며 갖가지 구실을 내세워서 동성애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난무합니다.
 

그런데 문제의 본질은 그러한 사후약방문 같은 처방이 아닙니다. 동성애는 나타난 현상만으로 판단해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한 윤리의 기준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타락은 성(性) 행태로 표출되고, 성 행태의 기준은 동성애 수용 여부로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동성애의 본질을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의 결과가 동성애를 낳습니다. 절대불변인 성경이 동성애를 어떻게 보는지가 이에 대한 판단과 치유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동성애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상숭배는 우상숭배로 끝나지 않고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다고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1:24~27).
 

바울은, 동성애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 한 심판의 결과라고 봤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 한 결과로 저급하고 저열한 욕심에 빠진 인간의 탐욕이 원색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 성경은 동성애를 관용하거나 옹호하지 아니하고 심판을 선포합니다. 바울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도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1:32).

죄의 결과이며 타락의 상징인 동성애는 우상숭배의 결과며, 진정으로 예수께 회개하고 돌아올 때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


       김선배 교수

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위 글은 교회신문 <3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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