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아사셀을 위한 염소 그리고 예수

등록날짜 [ 2015-04-07 17:17:49 ]

남의 죄를 대신해 모든 책임 뒤집어쓴다는 공통점 있어

우리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를 잊지 말아야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의 신년은 일곱째 달 1일이고, 그날에 나팔을 불어 새해 시작을 알리므로 나팔절(정월 초하루)이라 합니다. 또 일곱째 달 10일을 전 국민적 대속죄일로 정해 성회로 모여 큰 안식일로 지킵니다(레16:31).

 

대속죄일 제사에서 특이한 점은, 대제사장(아론)이 백성(회중)을 위해 두 염소를 끌고 와서 ‘여호와를 위하여’와 ‘아사셀(Azazel)을 위하여’라고 쓰인 돌 두 개를 항아리 안에 넣어 제비 뽑아 그 돌을 염소 머리에 하나씩 얹습니다.

 

‘여호와를 위하여’로 뽑힌 염소는 속죄제물로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1년 딱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십계명이 든 법궤 뚜껑인 속죄소 위와 앞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러면서 속죄의식을 행합니다.

 

“하나님! 지난 일 년간 나와 백성이 부지중에 범한 허물을 이 피로 깨끗이 씻어 도말하여 주시옵소서!”

 

이날만은 온 백성이 자기 죄를 토해 내는 회개에 전념합니다. 알고 짓든 모르고 짓든 내가 저지른 모든 부정과 죄를 해결하시는 속죄의 의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더 크고 온전한 장막인 저 하늘나라 거룩한 하나님 보좌 우편에 들어가시어 지금도 염소와 송아지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다 속죄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죄를 맡으시고 하나님께 사하시기를 간청하여 다 맑게 하십니다(히9:7~22). 날마다 주님께서 죄를 사하셨음을 고백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로 계십니다.

 

다른 한 염소는 아사셀(히브리어로 Azazel)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어에서는 남의 죄를 대신 혼자 짊어지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사람을 가리켜 ‘희생양(Scapegoat: 정확하게는 버려진 염소)’이라고 합니다. 죄인의 죄를 대신 지고 버림받는 염소라는 뜻이랍니다. 먼저 대제사장이 염소 머리에 안수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그 짐승에게 덮어씌우고 두 뿔 사이에 빨간 머리띠를 휘감습니다(레16:21~22).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의 박멸을 취급하는 심판 과정을 말합니다. 이날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특별히 아사셀에게 얹어 보내 죽게 하고 그들을 용서하는 날입니다. 대속죄일에는 모든 백성이 이른 시간부터 성전에 모입니다. 아사셀을 보내는 순간이 대속죄일의 최고 절정입니다.



아사셀 염소는 미리 정해진 사람에 의해 끈에 매여 예루살렘 거리를 통과하여 감람산을 지나 요단 강까지 가고, 거기서 배를 타고 요단 강 건너 동쪽 유다 광야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고난 행보’를 합니다. 거리를 지날 때 길가에서 수많은 군중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사셀 염소를 향해 저주를 퍼붓습니다. 어떤 자는 나뭇가지로 후려치기고 하고, 털을 뽑기도 하고, 어떤 자는 침을 뱉으며, 돌팔매질을 합니다. 기진맥진하여 질질 끌려온 염소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설움에 울고 또 울며, 광야 깊은 곳으로 한참을 더 끌려 들어가 광야 한가운데에 버려집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이 배가 고파 허기지고 갈증이 지나쳐 결국 죽어 갑니다. 그 참혹한 죽음을 확인하고 정해진 사람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빨간 머리띠를 하고 황량한 광야에 버려진 아사셀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예수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고 무수한 채찍에 맞으며 십자가를 진 채 예루살렘 거리를 저주와 조롱 속에 질질 끌려가다가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 매달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문 안이 아니라 광야 같은 성문 밖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와 저주와 고통과 재앙과 지옥의 심판을 다 짊어지시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셔 피와 물을 다 흘리시고는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가장 고통스러운 갈증으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목마르다는 절규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입니다. 부자가 지옥에 가서 목마른 갈증으로 절규하다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모금을 달라며 몸부림친 모습을 십자가 위의 주님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죗값으로 가야 할 지옥의 심판과 고통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죄에서 속죄와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죄는 인간이 지었는데, 죗값은 양과 염소가 대신 받고 죽은 것처럼,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의 대가는 예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빌라도 법정에 끌려가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셨는데 얼마나 고민하고 슬퍼하셨던지 “땀방울이 피 방울처럼 되었다”(눅22:44)고 했으며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마26:38)고 토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사셀 양이십니다. 무인지경으로 보내졌다는 것은 바로 여기 죽음의 골고다 언덕으로 보내진 것을 뜻합니다. 피와 물이 흐르고 흘러서 목이 타서 절규하십니다. 누구의 손에 의해 그렇게 되었습니까? 대제사장의 무리와 로마 군병들이 합작해서 예수를 죽음의 골고다 골짜기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심판과 재앙과 저주까지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무조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속죄의 진리를 가지고 순간순간 믿음으로 승리하고 진리가 주는 자유과 확신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최종진 교수

전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성북교회 담임목사

위 글은 교회신문 <4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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