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칼럼] 카이로스 시간 안의 삶

등록날짜 [ 2016-12-14 15:25:30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나 계신 하나님
지금도 믿는 자들에게 이적 보이며 함께하셔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성경의 구원 사건을 나를 위한 사건으로 가져야 한다. 이를 어떻게 체험 할 수 있을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수석 합격할 정도로 모범생으로 살았기에 내겐 죄가 없는 줄 알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봄방학 무렵, 내가 아주 큰 죄인이란 사실을 깊이 깨닫는 중생(重生)의 경험을 했다. 그 때 풀리지 않는 큰 의문이 생겼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오늘 한국 대전에 사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심한 고뇌에 빠졌다. 그러다가 요한복음 8장 56부터 58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첫째,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의 현재성(요1:1~14;8:56~58)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메시야 선언과 유대인의 공격적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유대인이 예수께 “네가 아직 오십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공격하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Before Abraham was born, I am)”라고 답하신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과거성과 예수님의 현재성이 표현된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받는 내용이 나온다(창14:19). 멜기세덱은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분이시다(히7:2~3). 이때 아브라함은 성자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성육신(成育身)하여 세상에 오시기 전, 그리스도의 현현(Christophany, 나타나심)이시다.

요한복음 8장 58절은 예수께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내가 있었느니라”로 해야 하는데 ‘내가 있느니라’고 현재형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신성, 즉 하나님으로서 영원성과 현재성을 뜻한다. 우리는 죽으면 영혼이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영적인 세계, 하나님 나라의 초자연적 시간과 공간에 들어간다.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은 영원한 현재다. 거기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영원한 현재형이 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과거에 묻힌 사건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어 항상 현재 사건으로, 오늘 내게도 지금의 사건이 된다. 하나님의 사건, 카이로스의 시간,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 안에 일어난 참하나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크로노스(Chronos, 물리적 시간)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 즉 ‘하나님의 시간’ ‘영원한 현재의 시간’에서 사는 것이다. 이를 깨닫자마자 나의 죄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진리가 주는 자유를 체험하게 되었다.

구약에서 죄를 지은 자는 흠 없는 깨끗한 양을 번제단 앞으로 끌고 와서 머리에 안수하여 자기의 죄를 양에게 다 뒤집어 씌운다. 죄 없는 어린 양에게 자신의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제단 북쪽에서 양의 목을 쳐 피를 받고 각을 뜬다.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에 붓고 그 제물을 완전히 태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그 짐승에게 내려지고, 대신에 그 죄인은 죄에서 용서와 자유를 얻는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언제 어디서 넘겨받으셨을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전에 겟세마네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넘겨받으시고 땀방울이 핏방울로 바뀌는 고통, 무서운 죄의 무게를 느끼신다(눅22:44).

그래서 땀과 눈물과 핏방울이 범벅된 주님의 겟세마네 기도에는 아담과 조상에게서 내려오는 원죄(原罪)와 유전죄와 우리 일생의 죄가 함께 있었다. 우리의 죄를 넘겨받으신 주님은 그때부터 죄인 취급을 받게 된다. 바로 그때 가룟 유다가 체포 병력과 함께 예수님께 온다.

어린 양이 사람의 죄를 넘겨받고 죽어서 대신 죗값을 치르는 것처럼,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위임받아 죄인이 되신 주님은 그 죄의 형벌과 그 죄의 대가인 죽임을 당하시려고 십자가 길을 가시고 십자가에 고난받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다. 나의 죄와 허물을 사하시려고, 예수님은 시대를 걸쳐 영원한 현재, 지금 우리의 죄와 저주와 심판을 친히 대신 담당하시는 만유의 주님이시다.


둘째, 성부 하나님의 현재성이다
출애굽기 3장 14부터 15절에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나는 나다: I AM who I AM)니라”라고 하셨다. 여기 ‘스스로 계신 분’의 뜻은 ‘내가 있고자 하는 장소나 때, 내가 있고자 하는 자에게는 어느 곳이건, 언제나 바로 그때, 그 사람에게 내가 현존 하느니라’다. 여기 ‘I AM’도 영원한 현재다. 하나님의 존재는 항상 현재형이다.


셋째, 성령 하나님, 보혜사의 현재성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곧바로 오신 하나님의 영 보혜사 성령님도 우리와 친히 항상 함께 계신다. 보혜사는 나를 도우려고 오신 분으로 성경에 기록된 구원 사건, 축복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내 삶과 직접 연결 해 주신다. 성령님은 하나님 말씀을 현재화하고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역사화(歷史化)하고 현장화하신다. 성경에서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신다.

나의 시간(Chronos)을 하나님의 시간(Kairos)으로 바꾸는 것이 믿음이다. 믿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자다. 영생은 죽은 다음에 얻지만,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지금 여기서 영생의 시간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죽음의 시간은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금 삶이 영원한 생명, 영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은 정확무오하다. 성경 속 하나님의 구원 사건, 하나님의 이적과 축복의 약속을 믿고 고백하면 오늘 내 삶 속에 그대로 이뤄진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중략)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라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오늘도 똑같이 일하신다.



/최종진 교수
前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前 한국기독교학회장

 

위 글은 교회신문 <50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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