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예수를 향한 확실한 믿음
마가복음 강해⑫

등록날짜 [ 2023-09-03 20:46:56 ]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와

혈루병을 고침받은 여인처럼

주님 앞에 믿음 보여드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셔


마가복음 강해⑫ 

예수께서 갈릴리 동편의 이방인 지역인 거라사에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후 배를 타고 갈릴리 서편의 유대인 땅 가버나움으로 이동하셨습니다. 바닷가에 계실 때 회당장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발아래 엎드려 간구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막5:23).


유대 사회에서 회당장은 신앙 공동체인 회당 모임이나 예배를 주관하며 상당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신분인 야이로가 많은 사람이 지켜보던 해변에서 나사렛 출신 목수 청년 앞에 엎드리는 모습은 사람들이 보기에 놀랄 만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딸을 구하려는 아버지의 절박한 심정을 감안하더라도 예수가 딸을 고칠 수 있는 권세를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기에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이기 때문에 이때 구원이라는 것은 그들의 곤고한 사정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간구를 듣고 예수께서는 야이로의 딸이 구원을 얻어 살게 하려고 그와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떠나보내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가며 에워쌉니다. 그 무리 중에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어떻게든 병을 고쳐 보려고 많은 의사에게 찾아갔지만 오히려 괴로움만 받고, 재산도 다 허비하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막5:25~27).


그 여인이 뒤로 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관습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에게, 더구나 남자의 신체에 접촉하려고 접근하는 일은 금기였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부인과 질환으로서 하혈이 계속되는 혈루증은 율법에서 부정한 질병으로 여겼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사람들 앞에 나와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여인이 만지는 것마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레15:19~27).


물론 당시 그 여인처럼 병을 나아 보려고 예수를 만진 사람은 많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병 나으려고 자신을 만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들을 피해 배에 올라 말씀을 전하실 정도였습니다(막3:9~10). 그러나 예수를 만지려고 한 사람 모두가 예수를 구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께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하니 그를 만지면 혹시 자기들의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예수를 만진 것입니다.


그러나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녀에게는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자신의 병이 분명히 나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예수가 자신을 구원할 구주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간절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으로 예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여인은 혈루병 탓에 유대 사회와 종교 공동체에서 불결하고 부정한 여인으로 냉대받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옷을 만지려고 한 행위 때문에 율법을 어겨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암담하고 두려운 처지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애절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온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중풍병자를 위해 지붕을 뜯은 친구들도 그중 하나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혹시 지붕을 뜯어내었다가 병을 못 고치면 괜히 소란만 피우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 없이 ‘분명히 병을 고침받는다’는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고 중풍병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혈루병 앓던 여인도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믿음을 드러낼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막5:29~30).


예수의 물음은 누가 옷에 손을 대었는지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이 율법을 어긴 데 따른 모든 형벌까지도 무릅쓰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을 고된 사정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인을 부르신 이유는 여인을 곤혹스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병 고침받은 여인을 통해 예수님의 치유가 오직 믿음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막5:34).


당시 예수의 신체 일부나 옷을 만져 병 낫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막3:10). 이것은 예수의 신성과 인간을 불쌍히 여기심에 기인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누구신가 하는 것보다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다는 사실에 더 주목하게 했습니다. 예수의 본질 자체가 가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인을 많은 사람 가운데 나오게 하시고 그의 믿음을 강조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가려는 것을 시정하셨습니다.


혈루병에서 나음을 입은 여인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주님 앞으로 가서 엎드려 모든 일을 고백했습니다(막5:33). 이처럼 여인의 간증을 많은 사람이 듣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차원에서 그치지 말고 믿음을 당당히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의 옷을 스치고 몸이 닿았지만, 예수에게 마음을 댄 사람은 오직 그 여인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의 인격을 향한 진실된 믿음과 자신의 두렵고 곤고한 문제를 예수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두려운 문제를 해결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지옥 갈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운 문제를 해결하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수용하여 구원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1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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